[전주MBC 자료사진]
◀앵커▶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 유해 100여 구가 전주 황방산에서 추가 발굴됐습니다.
지난 2차례 발굴에서 78구의 유해가 발견된 뒤, 추가로 대규모 학살의 참상이 드러난 건데요.
대부분 재판도 받지 못한 미결수들로, 부역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학살된 것으로 추정돼 참혹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허현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전주 황방산 자락, 70여 년 동안 잊혀졌던 기다란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30미터 길이의 구덩이 3곳에서 오랜 세월을 견뎌온 유해들,
치아와 다리뼈 등 단단한 부위만 일부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비교적 형체가 남아있는 유해 3구를 통해 그날의 참상을 짐작할 뿐입니다.
[박현수 학예연구실장 / 전주대 박물관]
"얼굴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똑같이 이렇게 묶여 있는데, 가운데 손뼈까지 이렇게 있어요. 묶여있었다는 거거든요."
추가 발굴된 유해는 100여 구,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주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들로 추정됩니다.
확인 사살을 한 듯 유해 부근에서 발견된 M1과 카빈 탄피는 학살 주체가 국군과 경찰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깨진 안경과 신발, 다양한 모양의 단추는 수의조차 입지 못했고, 재판도 받지 못했던 미결수였던 점을 보여줍니다.
[박병식 / 희생자 유족]
"이쪽 황방산 쪽으로 많이 왔다니까 큰누나와 할머니가 또 많이 찾으러 다녔었고... 그때도 와서 뒤져보고 그랬었대요. 그런데 알 수가 없어요. 막 훼손돼가지고, 얼굴이..."
대부분 20대에서 30대 남성들로, 그저 인민군에 부역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희생된 사람들,
당시 전주 형무소에는 정치범은 물론 여순 사건과 제주 4.3사건에 연루돼 수감된 이들도 수백 명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형용 / 여순사건 유족]
"군산 형무소에 가신 분들은 살아 돌아왔고, 전주 형무소로 가신 분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 얘기를 그전부터 들었어요. 이유도 모르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셔가지고 이렇게...."
앞선 2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78구를 확인한 데에 이어 드러난 대규모 참상,
희생자가 천여 명에 이르고 수백 명이 황방산에서 묻혔다는 증언이 일부 확인되면서, 사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진상 규명에 탄력이 붙을 전망입니다.
[박현수 학예연구실장 / 전주대 박물관]
"앞으로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서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저희도 생각을 하고 있고요. 끌려갔던 분들의 기록들과 대조를 해 봤을 때 일치하는 부분들, 이런 부분들을 찾아가는 것이 저희도 숙제로...."
조사단은 다음 달까지 추가 발굴과 감식을 벌인 뒤 유해를 수습해 세종 추모의 집에 안치할 예정입니다.
MBC 뉴스 허현호입니다.
영상취재:김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