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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도지사 꿈나무'의 불법 현수막
2025-11-12 321
조수영기자
  jaws0@naver.com

[전주MBC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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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북 지역 지자체들이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으로 몇날 며칠 머리를 싸맸습니다. 시험 문제는 단 하나였습니다.


Q. 불법 현수막을 발견했을 때 지자체의 적절한 대응으로 옳은 것은?

① 즉시 철거한다.

② 의원실에 연락해 본다.

③ 관련 조항이 복잡하다며 일단 보류한다.


정답은 당연히 ①이지만, 단속을 맡은 공무원들은 쉬운 답을 놔두고, 마치 고차 방정식의 'x값'을 구하듯 ②와 ③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했습니다.


답을 알고도 풀지 못한 이유는, ‘법 앞의 평등’ 대신 '이름' 앞에서 머뭇거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현수막 문구는 간결하면서도 따뜻함이 담겼습니다.



(사진출처 : 전주MBC)


"힘찬 응원, 따뜻한 박수"


하지만 시선은 다른 곳에 머물렀습니다. 정면 한가운데, 떡하니 큰 글씨로 적힌 이름, '이원택'.



■ 주객이 뒤바뀐 ‘응원’


표면상으로는 응원 현수막이었지만, 구성은 치밀한 계산의 산물처럼 읽혔습니다. 응원 문구 한 글자는 20cm, 이름은 한 글자가 60cm에 달했습니다. ‘청와대 행정관’, ‘정무부지사’라는 경력까지 빠짐없이 새겨져 있습니다. 메시지는 ‘수험생’에게 향했지만, 실제 초점은 ‘유권자’에게 맞춰졌습니다. 명백히 홍보성 현수막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불법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원택 의원 현수막은 정당명이 없는 '일반 현수막'이었습니다. 지자체가 지정한 게시대에만 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현수막은 행정복지센터 앞 담장, 교차로 주변 난간 등 곳곳에 무단 게시됐습니다. 통상 이런 불법 현수막은 하루, 길어야 이틀이면 철거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는 게 옥외광고물 업자들의 설명입니다.


“눈에 띄면 바로 정비 대상이 되죠. 바로바로 철거를 하죠.” - 옥외광고물 업자 A

“길거리에서는 불법을 거의 안 걸어요. 단속이 심하니까.” - 옥외광고물 업자 B


지자체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단속을 망설였습니다.


“의원실과 연락이 안 된다.”

“관련 조항이 복잡하다.”

“행안부에 질의해야 한다.”


법은 평등해야 하지만, 시민들은 ‘법보다 큰 이름’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 잼버리 경고한 이원택


이원택 의원은 한때 ‘경고하는 정치인’으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지난 2022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사태 1년 전, 그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설 미비와 폭염 대비 부족을 지적했습니다. 당시 그의 경고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사태가 터진 뒤에서야 언론들은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이원택의 경고가 옳았다”


양곡관리법 거부권 사태 당시에는 농민단체와 함께 국회 앞에서 삭발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줄곧 ‘현장형 정치인’으로, 내용과 책임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그랬던 이 의원이 거리 곳곳에서 이름 석 자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수험생 이원택'이 놓친 것


'경선이 사실상 본선'으로 취급되는 전북 지역 정치판에서 내년 도지사 선거 당내 경쟁에는 이원택 의원 외에 김관영 지사와 3선의 안호영 의원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김관영 지사는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현역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있고, 안호영 의원은 현재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렇듯 경쟁자들이 모두 만만치 않다보니 조급해졌던 것일까요? 


도지사는 전북 지방행정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행정력을 스스로 낭비하게 만든 셈입니다. '큰 이름' 앞에서 잠시 멈춘 행정, 선거를 앞두고 누구보다 먼저 법을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가 보여준 그릇된 행보는 불법 현수막을 뗀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의원은 취재진과 통화에서 "행정당국이 절차대로 할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 자체로 또 다른 풍자의 대상입니다. 절차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텐데 말입니다. “역대 가장 강력한 개혁 도지사”가 되겠다는 포부는, 법과 기본을 지키는 작은 행동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유권자가 채점하는 시험에서, ‘지방선거 예비 수험생’ 이원택 의원이 놓친 것은 책임과 모범, 바로 ‘기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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