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시월에~~(상받구 싶어서여)



푸르른 시월에 - 이공일오년 시월 사일,




이제는 추석도 지나고 며칠 있음 찬 이슬이 내리는 한로(寒露)다. 시월이 지나면 얼추 한해가 다해감이 와 닿게 될 것이다. 시월의 첫날인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깬다. 뉴스에서 비가 온다더니, 창밖에서 낙수(落水)가 닿는 소리가 아늑하게 들려온다.

엄마가 놀란 아기를 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달래주는 것 같다. 좀 늦은 감은 있다. 그래도 상당 기다렸던 비다. 참 오랜만에 오는 비라 반갑기 그지없다. 너무 가물어 아직도 저수지 등의 수량에는 별다른 변동이 미치는 양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농작물이 제법 해갈될 정도의 양은 되는지라, 여러모로 급한 불은 껐단 생각이다. 비는 아침나절에도 제법 내린다. 가뭄이 오래된 탓에 도로 등은 먼지만 폴폴 날리는 상황이었다. 근데, 비가 제법 쏟아지는 걸 보니, 금싸라기나 다름없다 여겨진다.

추수감사절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가뭄이 엄청 심해지고 있었는데, 오늘 비가 와서 추수절의 감사에다 비를 내려준 것까지 합해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난다. 앞으로 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비가 적어질 거라 하는데, 이에 대한 대비에 걱정이 조금 가져진다.

가을을 맞아 날이 너무 맑고 푸르니, 기분이 더 좋아지는 건 당연하리라. 연중 제일 쾌적한 날씨는 봄날의 5월과, 가을의 10월이다. 요즘의 날씨가 하도 맑고 깨끗하여 재주가 없음에도,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식으로 가을을 노래하고 싶어진다.

요즘의 맑은 가을날은 민경을 대하는 것 같다. 여름날에 누져진 이불의 홑청을 빨아, 바지랑대의 줄에 걸쳐놓은 것 같이 눈이 부시게 말끔하다. 어디에 눈을 둬도 해맑은 얼굴로 다가온다.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 얘기하고 싶어지리라. 걷기 등 여행에 오르고 싶으리라.

가을에 들고 있지만 오랜만에 비가 왔다. 대지가 좀 색다르게 활기를 품을 것이다. 주말에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깬다. 잠간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다 하늘에서 영(靈) 등으로 있었을 텐데, 지상에 내려와 욕심 등 탓에 부조화(不調和)로 어려운 생활을 한다.

그것도 다 천차만별(千差萬別)로 만들어져서 다 다르기에 갈등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늘에서는 다 선(善)한 마음을 갖고 늙지 않는 선계(仙界)의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떤 조화(造化)나 생활의 교체를 위해, 지상의 생활로 내려오게 됐을 것이란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허무맹랑(虛無孟浪)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 꿈이 잘 맞는 것을 봐도 영(靈)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니 말이다. 책에서는 신들이 다 조종한다고 하는 말도 있는데, 이것 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읽고 있는 책에, 주역에서 천도지사연(天道之使然)이라 했다. 하늘의 도가 그렇게 시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일이란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인위적으로 일어나고 변화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천도의 운행원리에 따라 인간도 그렇게 변화해간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선행하는 원리를 최고신인 제우스를 비롯한 신의 의지라 여겼다면, 고대 중국에서는 우주 삼라만상의 지배자인 하늘의 도리라 여긴 것이다. 동서양에서 비슷하게 하늘에 의해 만사의 것이 만들어진다 하니, 그리 생각도 된다.

두권의 책을 몇 줄 읽고는 운동을 위해 아령을 한다. 바깥에 나가 줄넘기를 한다. 아침 후 엊그제 비가 상당 내렸으므로 식물의 활기찬 모습을 기대하며 엄마집으로 향한다. 도착해서 얼마전 모종하고 파종한 배추와 무에 벌레 약을 한통 한다.

하는 김에 콩밭을 포함하여 네통을 한다. 아침에 운동을 좀 해서 그런지, 몸이 피곤함을 느낀다. 그만 집에 가서 쉴까하다가 두뭉탱이의 마늘을 쪼갠다. 이전에 퇴비 등을 뿌리고 갈아놓은 너댓고랑의 밭이 있다. 여기에 두어고랑 심어서 풋마늘을 먹기 위함이다.

엄니는 나이 들어 힘이 떨어지니, 만사 귀찮으신가 보다. 조금 사먹으면 될 텐데, 힘들게 뭐하라 심느냐며 핀잔이다. 그래서 운동 삼아 스스로 좋아서 하는 거라 말한다. 근데, 몸이 너무 무거워 마늘을 쪼개는 것도 버거워진다.

옛날에 부모님은 그 많은 마늘을 어찌 심었을까하는 어려움이 다 생각해진다. 거의 다 마늘을 쪼개니까, 엄마는 오늘은 그만하고 낼 하라고 말하신다. 몸은 무거워도 심는 것 까지 다 끝내려 했는데, 몸이 피곤하다보니 낼 하라는 말이 반갑게 들린다.

하던 일을 내동냉이 치듯 하고, 집에 오자마자 피곤함에 잠에 빠진다. 일요일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나 독서를 조금 하다 시내로 산책을 나간다. 뭔가의 상상이 떠오르지 않아도 아침공기가 쾌적하고, 웬지 모를 넉넉함으로 다가와 심신이 여유로워진다.

아침을 먹고는 오늘도 엄마집에 가서 어제 쪼개놓은 마늘을 심는다. 흙을 대하는 것과 얼마 되지 않는 일임에 즐겁게 해진다. 양은 두 고랑이 채 되지 않는 것이라 금방 끝난다. 얼마 전부터 산에 올라 쥐밤을 줍는 재미를 찾아보고 싶어 하던 터라 앞산에 간다.

실은 추석때 게으름피우다 성묘를 가지 못했다. 그래서 겸사겸사 내 건너 앞산인 큰집의 산에 간다. 산 입구의 아래편엔 친구네의 감나무가 제법 있는데, 많이 열려있다. 엊그제 바람이 좀 불었는지, 물렁감과 딱딱한 것도 많이 떨어져있다.

물렁감 하나를 주워 먹으니, 맛이 괜찮다. 고랑천변에 있는 으름나무를 살펴보나, 때가 늦어 두어개 벌어져 보이는 것이 말라 있을 뿐이다. 산의 입구에서부터 밤나무 아래에는 쥐밤이 많이 있고, 이것을 줍는데 재미가 쏠쏠하고 흡족해진다.

요즈음 가을이 너무 청명(淸明)해서 그 향기에 빠지는지, 산에 들면 숲속의 요정(妖精)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였다. 그래서 밤을 줍다가 요정을 불러보고 기대해본다. 떨어진 쥐밤이 많아 일단 한두 곳에 모아두며 바쁘게 줍게 된다.

그러다 나무 등이 그늘지고 색깔이 비슷해서 모아놓는 밤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잠시 요정이 가져갔나 하며, 미소를 갖고 찾아보니 바로 옆에 있다. 산에 쬐금 오르는 곳에서 산소에 들른다. 산소에서 나오자마자 반대편엔 친구네의 밤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다.

마침 친구의 아버님과 막내네가 서울에서 내려와 밤을 따고 있다. 인사를 하자 친구 아버님은 큰 밤을 조금 갖다 주신다. 산에 올라 줍는 재미와 쥐밤의 맛을 보고 싶어 줍는 거라며, 파는데 보태시라고 사양해도 맛이나 좀 보라며 한번 더 갖다 주신다.

친구는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아마도 아들생각에 더 주시는 것 같다. 친구는 올해 초에 나와서, 좀 있어야 나올 거라 한다. 위쪽으로 산소가 두군데 더 있어서, 밤은 산소에 들렀다 내려오다 좁기로 한다. 두 번째 산소에 들러 절을 올리고 다리쉼을 한다.

산속에 앉아 나무의 그늘을 받으며 있자니, 아직은 가을의 초입인지라 풀벌레가 찌르륵 찌르륵 여기저기서 울어 된다. 오랜만에 산 숲에 홀로 앉아 있자니, 심신이 너무나 평안해지고 여유로워 진다. 잠시 또 요정에 대하여 생각이 간다.

요정이 있을 까 하는 것인데, 설사 있다 해도 세상사에 찌든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도 않을 것이란 것이다. 다시 세 번째 산소에 들렀다가 내려오다 밤을 또 줍게 된다. 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잇는 곳을 헤치니, 밤이 많이 나온다.

좋아라 신나게 주워 담으니, 포대가 제법 무거워진다. 조금 더 줍다 산을 내려오는데, 친구네 집주변엔 부모님께서 밭곡식이며 감나무 등을 잘 가꿔놓으셨다. 감이 여기저기 많이 열려있어,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진다. 새 빨간 물렁감 하나를 따먹으니, 맛이 그만이다.

밤자루를 어깨에 메고 털레털레 걸어오다 이런 생각이 든다. 맑고 풍요로운 가을날이란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답게 빛나고 먹을 것뿐이다. 도로에도 대추와 은행이 많이 쏟아져 뒹군다. 자연의 모든 것이 잘 견뎌내고 아낌없이 줌에, 이것이 요정이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