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4(금)그곳에 가다

# 보은 법주사

이 절의 개조(開祖)로 알려진 의신(義信)이 일찍이 불법을 구하러 천축(天竺:인도)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경전(經典)을 얻어 귀국하여 

나귀에 싣고 속리산으로 들어가 553년(신라 진흥왕 14) 이 절을 창건하였는데, 법(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절이라 하여 법주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법주사의 정신적 지주가 된 미륵신앙(彌勒信仰)이나 법상종(法相宗)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은, 혜공왕 때 이 절의 중흥(重興)에 크게 기여한 진표(眞表)와 그의 제자 영심(永深)에 의하여 발현(發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덕왕 때 중수(重修)하였는데, 지금 남아 있는 석물(石物)은 모두 이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하여 현존하는 목조건물은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다. 

 

# 영주 부석사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 순천 선암사 

선암사는 특히 조선 왕실의 사랑을 받은 사찰로도 유명하다. 정조는 한동안 왕자를 얻지 못해 애가 탄 적이 있다. 

정조의 부탁으로 눌암대사가 선암사의 원통전 건물에서 100일 기도를 드렸는데 기적같이 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순조는 즉위 이듬해인 1801년 원통전에 큰 복을 낳게 한 밭이란 뜻의 ‘대복전(大福田)’ 현판을 하사했다.

지금도 순조의 글씨가 남아있는 원통전은 사찰인데도 조선 왕실의 건축 양식인 정(丁)자형으로 지어져 있다.  

 

선암사 뒤편 산자락에는 약 3만3000㎡(1만여 평)에 이르는 야생 차 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재래 차 밭이다. 

지금도 선암사 스님들이 차 잎을 직접 따 9번을 볶는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다. 은은하면서도 구수한 맛으로, 

떫은맛은 느껴지지 않는 우리나라 전통 차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한번 맛보면 쉬이 잊혀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