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3(금) 그곳에 가고 싶다

< 전남 강진  > 

 

# 김영랑 생가 & 모란 

김영랑이 1903년에 태어나 1948년 9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45년간 살았던 집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을 시멘트기와로 보수하였고, 

기단부와 벽체는 시멘트로 발라 원형을 잃어버렸답니다. 

하지만 1985년 강진군청이 그 집을 다시 사들여 복원작업을 하였고 원래 초가집의 원형으로 다시 지었습니다. 

 

# 다산초당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이 신유사옥에 연루돼 강진으로 귀양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해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게 됩니다. 

 

# 백련사 

백련사는 만덕사로 불렸으며 신라 문성왕 1년(839)에 무염(無染)선사가 창건했습니다.

그 후 절이 없어지고 터만 남았는데, 고려 후기 무신정권 시절에 요세(了世, 1163~1245)가 중창하고 천태종의 수행결사인 백련사(白蓮社)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대단한 거찰이 되었는데요. 백련사는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 자리 잡았던 조계종의 정혜결사로, 보조국사 지눌이 열었다)와 함께 고려 후기 불교 수행결사의 양 갈래를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