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8일 어버이날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 신청합니다

58일 어버이날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 사연 신청합니다.

 

저는 부안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33살 결혼해서 전주 평화동에서 24년째 살고있는 애청자입니다.

 

이번 58일 어버이날은 지난 410일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처음 맞는 어버이날을 그리며, 카네이션꽃 들고 엄마 계신 장지 정읍 선영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슬하에 딸 셋 아들 둘 5남매(, 아들, 아들, , )를 두신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수 년 동안 공공 근로 일하시다가 한 달 전 410일 출근 후 갑자기 쓰러지셔서 119 구급차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셔서 CT 찍은신 후 혈관조형술 검사를 해서 수술을 할 수도 있었는데 유지가 안되어 끝내 혈관조형술을 하지 못하시고, 당일 오후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친정엄마는 194518(음력) 태어난 후 해방을 맞이하셨지만, 살아생전에 항상 하시는 말씀이 인공 때 10살도 되기도 전 엄마 아빠 다 죽어서 부모 없이 친척집에서 살다 보니 이 고생을 하고 산다고 하시며, “세상 설움 중 배곯는것도 설웁지만, 그중에 젤 설운 것은 부모읎는 설움이 젤로 설웁드라라고 하셨습니다.

 

삼남내가 친척집에서 따로 따로 흩어져 살아서 한 살 많은 언니랑 세 살 아래 남동생이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모르고 지냈다고 하시며, 삼남매 얘기 하실때면 눈물 훔치신적이 많으셨습니다. 친척들이 입 하나 덜기 위해 엄마 19살때 열 살 많은 늙은 총각인 아빠와 음력 1226일 동지섯달 지나고 추운 겨울에 결혼했는데 밥은 먹는 집이라고 했는데, 시집 와서 보니 밥도 못 먹는 집 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시며 설움에 복받쳐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신 후 스므살 그 어린 것이 머 안다고(한숨을 크게 쉬시며), 애기 날 달은 돌아오는디 쌀이 떨어져 애기 나믄 워찌 키워야 허나, 땅이 꺼져라 걱정되야서 눈물바람으로 다니믄서 저녁에는 잠도 안오드라라고 하시며 울먹이신 기억이 생생합니다.

 

19621226(음력) 겨울 결혼해 1963926(음력) 첫 애기 낳은 후 애기를 젖을 먹여하는데 아빠가 남의 집살이 일을 가면 몇 달 살고오면 삯으로 쌀보리를 가져와서 생계를 꾸려가고있는 형편이라 아빠도 안계신 상황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집에 쌀이 아니라 보리쌀도 없어 엄마가 못먹으니까 젖이 안나와서 애기가 다 죽게 되는 모습을 지켜볼수밖에 없었다고 한이 맺힌다는 얘기도 가끔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서서 안계시고, 할머니만 계셨지만 할머니는 거동만 하시지 상황 대처를 하기 어려우신 상황이셔서 엄마가 애 다섯을 혼자 낳는데도 옆에만 계시지 탯줄짜를 가위도 엄마가 몸을 끌며 손을 뻗어 겨우 잡고 잘랐다고 합니다.

 

20살 어린 나이에 애기 낳아야 하는데 배는 살살 아파오고 힘든데, 그 추운 겨울 산에서 나무 해다 놓을랴, 애기 씻길 물 길어다 그 나무로 불때서 물 끓여 놓을랴, 끓인물로 탯줄자를 가위 소독할랴, 애기 낳으면 덮어줄 천 챙겨 놓을랴, 천 한쪼가리 없는집에 시집와서 덮을 이불도 변변찮아 냉골에서 애기 낳을때까지 차가운 방에서 밤을 지새며 울기도 많이 우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애기 덮어줄 천은 시집 올 때 친척이 챙겨주셨다고 하시며, 그 천을 준비하고, 20살 어린 나이에 혼자 애기를 낳고 탯줄 자르고 애기 씻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도 애 나은 지 한 달 지날때까지 밥을 제대로 못 먹고 굶은 날들이 많아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어,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애 간장이 타 들어갔다고 하시며,

 

그때 쌀은 커녕 보리쌀도 못 사먹고, 병원 갈 생각은 아예 꿈도 못꾸는 상황이라 할머니께서 애가 곧 죽게 생겼다며 애를 웃묵에 엎어 놓았다고 하는 대목을 얘기하시며, “그 때 피눈물이 나드라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흘러 큰딸, 큰아들, 막내딸  순서로 결혼을 하고, 저도 둘째딸인데 어느날 33(그때는 노처녀라고 했던시절)에 결혼하고 애둘 낳고 살고 있습니다. 물론 작은아들은 환갑이 다되었는데 아직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첫째 죽을려다 살아난 큰딸도 결혼해서 아들 한명 낳고 대구에서 살고 있고큰아들은 서울에서 삼남매 낳고 살고 있고막내딸도 서울에서 남매 낳고 살고 있고, 저는 전주에서 딸, 아둘 둘 낳고 살고 있습니다.

 

갑자기 엄마에게 궁금한게 있어 전화를 건 날이 있었는데요..다짜고짜 "엄마, 나는 재왕절개해서 낳아서 탯줄을 병원에서 잘라주었던 기억이 나는데, 엄마는 애 다섯을 혼자 낳았다고 했는데 탯줄은 어느 길이로 잘라야 하는지 어떻게 알고 잘랐어? 엄마? 우리 어렸을 때 놀면서 동네 애들이 배꼽 본 기억이 있는데, 우리 5남매 배꼽은 다른 애들처럼 쑥 튀어나온 참외 배꼽도 없고, 너무 쏙 들어간 배꼽도 없던데, 그때 누가 배꼽 어떻게 자르는지 알려 준거야? 엄마!" 라고 묻자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대답은 너무도 편안하고 낮은 목소리로 ", 알려주긴 누가 알려줘야, 어릴 때 친척집이서 자라믄서 으른들이 그러드만, 애기 나면 애기 안어 가지고 탯줄 애기 무릎까지 닿게 헌담에 가위로 무릎기리로 짜르먼 된다고 허드만, 그려서 그대로 했재!! 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때 저는 신세계를 만난듯 했습니다. 요즘시대 수많은 교육전문가와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보고 들은 것으로 한평생을 당신의 삶도 살고, 애들도 신체 건강하게 키우는게 가능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작은아들이 환갑가까운 나이인데 결혼안했지만, 나머지 자식 네 명은 시집장가가서 애들 낳고, 아직까지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런데로 가정 꾸리며 살고 있는데요, 엄마 팔순때 손주가 할머니 사랑한다는 현수막 만들어 오고, 카드 써서 읽어주고, 춤추고 노래불러드리며 축하해드리자 손주 8명의 재롱을 보며 엄마도 함께 춤추고 노래하시며 너무 기뻐하셨던 모습이 생생하네요!!

 

2008년 아빠가 돌아가신지 20여년 되는 동안에도 자식들 걱정할까봐 힘들다는 말은 가까이 사는 둘째딸에게만 살짝하시며 얘기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자식 네명이 서울 두명, 부천 한명, 대구 한명살고 있어 텔레비전 리모콘만 안되도 전주사는 둘째딸한테 얘기하시고, 편지가 글자 한자 한자는 읽으실 수 있지만 , 무슨 말인지 모르겄다, 니가 시간나믄 와봐라! 근디 시간 업스믄 읍사무소 가서 얘기할란다. 알았재?”라고 하시며 자식 잘 되기만 바라시며, 평생을 희생하신 엄마가 한없이 그리운 어버이 날입니다.

엄마는 지식을 배울 기회가 없어 한이 되시긴 하셨지만, 동네으른들 친척 으른들께서 하신 말씀 하나 하나를 곱씹으며 곤고한 지혜로 한평생 살아오시며 실천하신 위대한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어려운 시절 학교도 갈 수 없어 친척집에서 물 긷고 밥하고 빨래하고 나무하며, 밥 먹여 주고 재워주는것만으로도 감사했다고 하셨지만,

 

학교 문앞에도 못가본게 한이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 둘째딸은 또 물은적이 있는데요 "엄마는 학교 문앞에도 안가보셨는데 어떻게 글자도 읽고, 쓰고, 머리에 이고 타동네 장사도 가서 어떻게 계산했어 엄마?" 하고 물으면,

 

엄마는 그때마다 " 친척애들 하늘천따지..’ 공부허고 있는 소리 들리면, 일하다가 밖에서 가만히 들어본게 기억이 났고, "이일은이, 이삼은육, 이사팔, 이오십, 이육십이,이칠에십사,이팔에십육,이구십팔,... 공부허는 소리 듣고 불때믄서 나도 부지깽이로 써보고 했지! " 아무렇지 않게 말은 하셨어도 딸인 저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부러운맘에 발걸음 멈추고 공부하고 싶고 알고 싶어서 한참을 들었던 날들이 많으셨던 어머니는 숱한날들을 되뇌이며 반복 반복 또 반복하시며 복습하셨건거 같아요!

 

410일 돌아가시기전까지 이승에서 "내가 학교 문아페만 가써도 이르케 안사는디! 내가 핵교1학년 한달만 댕겼어도 이르케 안살았는디!!라며 부모없이 살아서 못배운게 한이셨습니다.

 

저희 친정 엄마는 저승에 가시자마자 하고 싶은셨던 공부하고 계실것 같아요!!

 

" 19살 그 어린 나이에 시집가서 애 다섯을 혼자 낳으시고, 희생으로 길러주시고, 자신의 삶을 뒤로한 채 온통 자식 사랑으로 살다가신 엄마, 엄마가 돌아가시전 날 택배로 보내주셔서 49일 저녁에 받은 파김치, 갓김치가 어느덧 익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저승까지 들리게 외쳐봅니다.

 

엄마, 사랑해요!!

 

다음생엔 엄마와 딸 바꿔 태어나, 엄마께 받은 사랑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반의 반이라도 나눠드릴께요!!

 

배운것이라곤 친척아이들 공부하는 소리를 일하다가 오며 가며 들었던게 전부인채로 80평생을 건강하게 살아오시다가 공공근로 출근해 쓰러지셔서 당일 오후 유명을 달리하신 저희 친정엄마 발인날은 꽃비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흩날리는 날이었어요.

 

비가 온다는 예보와 달리 너무나도 화창해서 평생을 희생해오신 엄마의 죽음을 하늘도 알고 가시는 길 날씨를 바꿔주셨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의 하얀 가루 수목에 흩뿌리고 와서 엄마 집 부안에 들러 엄마 쓰러지신 장소도 가보고, 엄마 집 주변도 둘러보며 이제 다섯 자식이 엄마 유품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엄마를 어떻게 기리며 살아야 할 지 돌아오는 49재때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엄마를 잃은 슬픔도 잠시 뒤로한 채 또다시 현장에서 공동체의 삶에 몰입하고 있는 유족 둘째 딸 올림.

 

32년을 애청자와 함께 삶을 함께 달려와 주신 전주MBC라디오 김차동 FM모닝쇼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