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2(화) 임주아작가의 책방에 가다

오늘 소개할 책은?

어느 날 집에 낯선 남자가 찾아와 자신이 화성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할 책은 일본 작가 아베 고보의 유일한 SF 소설 『인간 판박이』입니다. 

주인공 ‘나’는 ‘안녕하세요 화성인’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인데요. 

어느 날 세일즈맨처럼 보이는 남자가 찾아와 자신은 화성인이며 화성의 토지를 알선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곧 그의 아내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 와 남편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죠. 이 남자는 거짓말쟁이일까, 아니면 정말 화성인일까. 이 의심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설정만 들으면 상당히 기묘한 SF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런데 우주선이 날아다니거나 화성을 탐험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건이 평범한 집 안에서 벌어지고, 소설의 상당 부분이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문제는 화성인이라는 남자의 이야기가 황당하면서도 이상할 만큼 논리적이라는 겁니다. 

‘나’가 그의 말을 반박할수록 오히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망상인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경계가 흐려집니다. 

평론가 후쿠시마 마사미는 이 소설을 읽는 경험을 ‘현기증’에 비유했는데요. 

대화를 따라갈수록 독자 역시 발밑의 현실이 조금씩 흔들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SF로 쓴 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작가에게 SF는 단순히 미래나 우주를 그리는 장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내가 꿈꾸는 것은 문학 속에서 SF 정신이 복권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이라는 가설을 던져 현실을 다시 바라보는 문학을 원했던 겁니다. 『인간 판박이』에서도 ‘이 남자가 정말 화성인이라면?’이라는 황당한 가정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러다 보면 질문은 오히려 우리 쪽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누군가를 인간이라고 판단하는가, 

또 무엇을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가. 화성인 이야기를 읽다가 결국 인간과 현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베 고보는 어떤 작가인가요?

일본의 ‘카프카’라 불리는 아베 고보는 1924년 도쿄에서 태어나 이듬해부터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만주에서 살았습니다. 

도쿄대 의학부를 졸업했지만 의사가 아닌 작가의 길을 택했고요. 1951년 『벽─S. 카르마 씨의 범죄』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이후 『모래의 여자』가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소설뿐 아니라 희곡과 연극까지 넘나들며 활동하다 1993년 세상을 떠났는데요.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뒤집어 인간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했던 작가입니다. 

『인간 판박이』에서도 그 질문을 ‘화성인’이라는 기묘한 존재를 통해 다시 한 번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