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봉언니의 노래로..씻어드리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깨동 오빠~ 아침 출근시간에 매일 활기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희들에게 항상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시며 호통치시던 저희 어머니께서도 세월의 흐름에 묻혀가셔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꽃을 참 좋아하십니다. 어디를 같이 놀러 나가도 꽃을 보시면서 행복해 하십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아이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지신 저희 어머니께서 어떻게 혼자 자식 다섯을 키워냈는지 정말 불가사의랍니다. 엄마들은 위대한 존재라는 거,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서는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는 말이 공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그런 어머니가 더욱 안스러운 것은 자식들이 채워줄 수 없는 자리가 오래전부터 비어져있기 때문입니다. 그 공간은 도저히 자식들의 효도로도 매꿔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살면서,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자신이 힘들 때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고된 이별도 아닌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아버지를 하루만에 떠나보내신 저희 어머니는 39세의 나이에 혼자가 되셨고, 곁에는 손가락만 빨고 있는 자식이 다섯이었습니다. 어머니 눈에는 절망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어깨가 무거우셨을까요? 남동생 나이 7살, 제 나이 7살, 윗 언니들 나이 10, 11, 13 살 때의 일이었죠. 당장의 자식세끼들 배곪지 않게 하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식당일부터 포도농장까지 당신 몸 축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일을 하셨습니다. 점심도시락으로는 항상 밥만 한가득 싸가지고 나가셨죠. 맛난 반찬은 항상 자식들 앞에 놓아주셨고, 어쩌다 나오는 조기와 같은 반찬은 쓴 내장을 맛있다고 하시며 자식새끼들이 남기는 부분만 드셨습니다. 얼마나 하루 하루가 길게만 느껴지셨을까요..... 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도 모르게 바쁘게 사시던 어머니께 병마가 찾아오는 것은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최근까지 3번의 뇌경색을 맞으셨습니다. 벼락을 맞듯이 갑자기 찾아오는 병마라 ‘맞는다’ 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때의 후유증으로 언어장애가 남아있어 아직도 말씀하시는데 자꾸 단어를 틀리게 발음하십니다. 예전에는 잘 기억하시던 것도 자주 잊어버리시곤 합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저희 어머니께 너무나도 이 티켓을 드리고 싶습니다. 콘서트란 것은 생전에 한번도 가보시지 못했답니다. 깨동오빠 도와주세요......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 1차 동영아파트 나동 307호 011-9858-9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