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

내일(18일)은 우리학교 새로운 학급 배정이 있는 날입니다. 전 중학교 2학년 담임입니다. 지난 해 가을 우리 반 컴퓨터에 성인싸이트에 접속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이번 기회에 혼내지 않으면 계속된 인터넷 접속이 있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저는 최대한 성이난 표정을 지으며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은 쉬는 시간에 저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쉬는 시간에 무려 남학생 18명 중 17명이 저에게 왔습니다. 전 당황했고 이유를 물으니 모두 지나가는데 성인 싸이트에 접속이 되어 있어서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전 최초 접속자가 누구인지 나오지 않으면 점심시간에 모두 의자를 들고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결국 점심시간 까지 인터넷에 접속한 학생은 나오지 않았고 교실에 들어서니 모두 의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전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처음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은 솔직하게 고백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선생님 제가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전 그 학생을 불러서 근엄하게 혼을 내고 한달 동안 학교 도우미 활동을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의자를 들고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내가 여러분을 잘못 지도한 탓도 있으니 같이 기압을 받겠다'고 하며 의자를 들고 뒤에 가서 섰습니다. 팔이 어찌나 아프던지요.ㅎㅎ 내심 이녀석들 이제 다시는 안그러겠지 하며 갖은 좋은 말과 협박(?)을 하며 나머지 점심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내가 참 훌륭하게 아이들을 교육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종례시간에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선생님 승훈이가 한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전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 했습니다. 그 후 이유를 알아보니 우리 반 남자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며 평소에 자신이 잘못을 했으면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이 담임의 말을 생각하고 한 친구가 자기가 했다고 하면 다른 아이들이 연달아 자신이 했다라고 하면 담임인 제가 용서해 줄 거라 생각하고 서로 자신들이 했다고 말하기로 약속을 했던건데 승훈이가 자신이 했다고 한 다음에 나머지 학생들은 겁이 나기도 하고 기회를 놓쳐서 이야기를 못했던 겁니다. 전 그 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저의 잘못된 판단이 승훈이에게 큰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전 다음 날 아이들에게 저의 사려깊지 못함을 공개 사과하고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또, 친구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던 승훈이를 칭찬하고 도우미(옛날 주번) 활동도 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최초 인터넷 접속 학생을 찾을 수도 있지만 더이상 찾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으로라도 승훈이에게 미안해 하는 마음을 갖기를 당부했습니다. 이제 우리 반 아이들이 다시는 성인싸이트에 아무도 접속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생겼으니까요. 이제 그동안 함께 싸우고 노래하며 공부했던 2학년 2반 아이들이 내일은 3학년이 됩니다. 아직 어려 보이고 철이 없어 걱정이면서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우리 아이들의 지혜로움과 정직함을 믿으며 그들을 이제 보냅니다. 김차동씨 우리 아이들의 3학년 진급을 축하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 한번 승훈이에게 담임이 미안하다는 말 전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불러 주던 노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신청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꽃보다 아름다우니까요. 보내는 사람: 전북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608-9 군산중앙중학교 2학년 2반 담임 신준협 016-336-7170, 063-453-9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