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

안녕하세요? 저는 환경운동을 하는 시민운동가입니다. 물과 바람과 햇빛 속에서 사람이 자연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고 빠르고 감각적인 속도전의 시대에서 느리지만 오래 지속될 수 있고 낮지만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심으로 6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직접 환경운동연합에 뛰어든지 어연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참 바쁘게 지낸 2년이었습니다. 저는 새만금과 핵폐기장으로 눈, 코뜰새없이 바빳고 주민들의 환경 민원도 해결하고 아이들과 함께 자연속에서 생태 체험 교육도 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기념행사도 일의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저와 함께해온 아내는 저의 새로운 출발을 흔쾌히 이해해주었고 영화제나 언론운동까지 다양한 관심사에 오지랖 넓은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아내가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있고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하곤 했습니다. 저는 정말 아내가 그런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내가 많이 힘 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큰며느리와 큰 딸로 부담을 안고 있는 아내는 경제 생활 규모를 줄이기 어려워 좀 더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한들이와 산들이의 엄마 노릇을 위해 밤 열시가 넘어서도 시댁이 있는 정읍 태인을 일주일에도 서너번씩 다녀갔고 집안 대소사를 위해 자신에 대한 투자를 줄여갔습니다. 제가 미리 선물한 생일 선물도 시부모와 장인의 어버이날 선물로 바꿀 정도이니까요. 아내가 이처럼 경제적 어려움과 장시간 노동의 피곤함을 온몸으로 감내할 때 저는 모른 척 지나가기 일쑤였고 예전부터 잦아진 큰 아이 돌보는 일에 생색 내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원래 생활력도 강하고 완벽주의자이다보니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느새 사회적 공익을 앞세워 아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삶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아내가 무엇보다도 힘이 들었던 것은 남편의 활동이 별다른 기대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시민운동이 갖고 있는 어쩔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은 차치하더라도 환경운동에 대한 전문성과 비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소홀함에 대한 실망감과 세심한 배려를 하지 못하고 자기 잘난 척만 하는 남편이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전 요즘 영화 보느라 아내는 뒷전이었습니다. 물론 여섯 살 한들이와 영화를 보는 조건이었지만... 몇차레 같이 영화보러 갈래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아내는 쉽게 극장으로 나설 수 없었습니다. 한참 농번기라 아이들을 맡기고 영화를 보러간다는 말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였다나요. 이리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의 생일이 내일입니다. 언제나 밝은 미소와 단아한 모습으로 주위 사람을 기쁘게 해주었던 아내가 다시 활기찬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기 바랍니다. 열심히 일하는 저의 모습에서 아내가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미안한 제 마음을 오늘 하루도 일하러 출근 길에 있을 아내에게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정현 011-689-4342 / 286-7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