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간의 시각장애 생활

지난 여름 여동생과 저는 벼루고 벼루던 라식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여기 저기 시장조사를 마친 후에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예약을 했지요 주위에서 먼저 하신분들 얘기로는 수술이 끝나면 썬글라스도 주고 진통제도 줘서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밝은 세상을 볼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죠 수술날, 제가 먼저 수술대에 올랐는데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 아마 의사선생님 집도에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을꺼라 생각되네요 동생까지 무사히 수술은 마쳤는데 썬글라스도 진통제도 없이 그냥 가라는 겁니다. 약봉지 하나 주시구요... 멀리 떨어진 이모댁까지 가려면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야 되고 갈아타는 역도 정확이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도 될까 하는데 우리는 거의 눈도 뜰수 없는 형편에다 눈물, 콧물만 계속 나는 거예요. 거기다가 왜이리도 따끔거리는지 말그대로 앞이 캄캄했습니다. 어쨌든 우리 둘은 팔짱을 꼭 끼고 눈물이야 나건 말건 실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전절을 향해 나아갔지요. 그래도 저는 언니라고 '00야 너는 눈 감아! 난 별로 안아프니까 내가 잘 볼께'라며 동생을 위로했지요.주위 사람들의 시선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더듬거리며 전철을 탔는데 이게 웬일! 퇴근시간이라 발디딜틈도 없는 거예요. 어렵게 버티고 있다가 제 실눈 사이로 좌석이 하나 보이길래 얼른 동생을 밀어넣고 억지로 제 엉덩이까지 밀어 넣었죠. 좀 살만 했습니다. 눈물, 콧물에다 화장도 안해서 몰골이 말이 아닌채로 하차해야 할 곳을 놓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귀를 쫑긋세우고 있는데....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웬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가 저희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며 '요즘 젏은 것들은 말이야, 위 아래가 없어. 자는척만 하고 있으면 다야? 비켜' 하시는 거예요. 그 자리는 다름아닌 노약자석이었던 거예요. 거의 반사적으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할아버지를 향해 '할아버지, 저 학생들, 시각장애인이예요. 앞을 못본다구요. 보면 모르세요?'하며 조심스레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안그래도 시선을 끌던 저희 자매는 그 할아버지 덕분에 엄청난 스타가 되었지만 우리는 눈이 너무 아픈터라 주위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답니다. 지나고 돌이켜보니 낯선 지역에서의 가슴 아픈 추억이었습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지금은 시력이 많이 좋아져서 남부럽지 않아요. 애청자 여러분 라식수술 하실때는 반드시 썬글라스 챙겨가세요 익산시 어양동 주공5차아파트 505-1505호 김희선 017-484-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