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

30도의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토요일 오후. 아이들(3학년, 4학년) 과 함께 할아버지댁에 감자를 캐러 갔다. 감자를 캐러 가자고 아이들에게 얘기할 때 싫다고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고추가 빨갛게 익은 작년 가을. 현재 3학년인 우리 아들이 닌자에 푹 빠져 있을 때였다. 우연히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닌자를 보게 되었는데 그게 너무 멋있고 갖고 싶다고 하였다그래서 가격을 알아봤더니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닌자가 2만원이 넘었다. 친구들은 있는데 자기만 없다고 한탄하는 아들의 마음을 모른척 할 수가 없어 사 주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사람의 욕심, 또한 아직 절제와 참을성이 부족한 아들에게는 갖고 싶은 새로운 닌자들이 계속 생겨났다.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려고 사주다 보니 경제가 힘들어지고 아들에게 화내고 아들은 속상해하고 참 힘들었다. 이때쯤 우연히 시골에 아버지와 통화하다가 고추 수확시기인 것을 알게 되었다. 번쩍하면서 스치는 기발한 아이디어. 아이들과 함께 고추를 따러 갔다. 가기 전에 고추 한 바구니당 천원의 일당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아이들은 아마 생각했으리라 딸기밭, 포도밭 체험쯤이려니. 또한 한바구니당 천원을 준다고 하니 얼마나 좋으랴. 우리 아들은 고추를 많이 따고 일당을 많이 받아 그것으로 닌자를 사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아주 신나게 할아버지댁에 가는 것을 동의했다. 비가 온 다음날이어서인지 고추밭에서는 쾌쾌하면서도 매운 냄새가 진동했고 여름이 이제 물러가기 시작한 초가을 햇살이 무척 따가웠다. 아이들에게 고추따는 방법을 알려주고 고추대가 끊어지지 않게 조심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우리 아들 "내가 오늘 제일 많이 딸꺼예요" 큰 소리치며 따기 시작했다. 익은 고추 윗부분을 잡고 익은 고추만 따야 하는데 빨리 많은 고추를 따고 싶은 우리 아들 고추와 힘내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며 고추를 따고 있는데 두 바구니째 고추를 따고 있던 아들, 고추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미식거려서 쉬어야겠다고 했다. 잠깐 쉬고 고추를 따겠다던 아들 그 이후론 고추밭에서 볼 수가 없었다. 잠깐의 체험이었지만 돈버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닌자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다만 자기의 욕구는 어찌할 수 없는지 진짜 명품은 못사고 짝뚱를 샀다. 그리고 친구의 진짜 명품과 비교하며 눈이 이상해, 색깔도 이상해눈이 지워졌어 속상한 자기의 마음을 쏟아냈다참 안타까웠지만 세상살아가면서 필요한 절제와 참을성을 배워가는 중요한 시기라 생각하며 묵묵히 지켜보며 지내왔다.

올해의 이른 장마로 갑자기 바빠진 시골. 장마오기 전에 감자를 캐야하는데 일손이 부족하여 걱정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아이들에게 감자를 캐러 가자고 했다. 흔쾌히 승낙하는 아이들을 보며 기뻤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감자밭. 아들은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대로 땅을 파고 감자를 캤다. 나와 딸은 할아버지와 아들이 캔 감자를 크기별로 선별하여 박스에 담는 일을 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감자밭에 몰려든 뜨거운 햇살로 인해 어지럽고 기운이 쭉빠져 일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힘들다하면서도 짜증내지 않고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은 나를 일으켜 세운건 아이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도 많이 힘든지 물마신다고 자주 자기 일터에서 벗어났지만 감자밭에서는 나가기 않았다.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 아들 나에게 애교어린 미소를 날리며 "엄마 용돈 주실거죠?" 참 귀엽고 멋졌다. 경운기를 타고 가며 무엇이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 그러더니 갑자기 엄마 사랑해요 하트모양을 그린다. 할머니께서 감자 캐느라고 애썼다며 용돈을 주셨다. 우리 아들 "엄마 조금만 더 모으면 내가 갖고 싶은 닌자 살 수 있어요" 얼굴에 함박웃음꽃이 피었다. 아직도 닌자를 사랑하는 우리 아들. 몸만 크고 자란줄 알았더니 어느새 인내심도 기르고 마음도 따뜻하게 자란 아이들을 보며 참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요즘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위해 돈을 주고 시골체험 학습을 시키는데 우리가족은 용돈을 받으며 또한 맛있는 감자를 한아름 챙기면서 아이들에게 말로는 절대로 가르쳐줄 수 없는 귀한 배움을 자연에서 얻어 마음에 가득 담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주시 양지2

박 미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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