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2(수) 책방에 가다 - 이정록'아버지학교'

시인 이정록은 지난해 10월 시집 <어머니학교>를 펴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제목에서 짐작하다시피 어머니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기획시집이고, 당시 어머니 연세에 맞춰 일흔두 편의 시로 꾸몄다. 그가 내친김에 그 시집의 짝패라 할 시집 <아버지학교>를 내놓았다. 돌아가실 때 연치에 맞추어 쉰여섯 편의 시를 묶었고, 어머니 편에 비해 부족한 분량은 아버지를 회고한 산문 셋으로 벌충했다.

“사내란 탁한 세상에서 탁발을 하고는 구름 너머 시린 하늘로 마음을 씻지. 식구들 뱃속 채워주는 일이라면 시궁창에 발 담가도 되는 거여. 사내는 자고로 연지(蓮池) 수렁에 서 있는 왜가리 흰 연꽃이여.”(<왜가리-아버지학교 7> 부분)

“저 흰 그늘, 혼자만 녹지 못하고 잠시 멈칫거리는 시린 것,/ 가슴에 성에로 쌓이는 저 아린 것, 조런 실타래가 엉켜서/ 마음이 되는 거다. 빨래집게처럼 움켜잡으려던 이름도/ 미음처럼 묽어짐을, 고삭부리 되고서야 깨닫는구나.”(<새-아버지학교 9> 부분)

<어머니학교>처럼 <아버지학교>에도 생전 아버지의 말씀을 생생한 입말투로 옮겨 놓은 작품들이 여럿이다. 아버지라는 자리의 영광과 부담,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세계를 일구어 갈 자식을 향한 염려와 자부, 그리고 먼저 세상을 살아오면서 챙긴 나름의 깨달음과 교훈 등이 시집에는 그득하다. 그러나 자식이란 애물이어서 “아버지를 꺾지 않고는 한 발짝도 들어갈 수가 없”다는 투로 엇나가곤 한다. 그 바람에 “아버지의 뒤편이 자꾸만 꺾어졌”(이상 <신발-아버지학교 48>)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뒤늦게 “아버지는 본래 빈 뚝배기(…)/ 겨울 논, 속이 파먹힌 우렁껍데기”(<목젖 봉오리-아버지학교 54>)라는 사실을 깨닫지만, 후회는 늦고 자책은 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어머니학교’의 동창생이고 ‘아버지학교’의 불량학생들”이라고 시인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