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인가 요~ 서울 한강변로 여인 정인숙 피살사건 친오빠 정종욱 씨 범행 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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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 1970. 03. 20...

강변로 여인 피살사건 친오빠 범행단정
매일경제 | 1970. 03. 20 기사(뉴스)
 
강변로 여인 피살사건 자백했다 또 횡설수설
운전석 옆 장갑 등서 화약 반응 발견

한강변 3로 여인 권총살인사건의 진범은 피살된 인숙 양의 친오빠 정종욱 씨의 범행으로 단정되었다.

20일 상오 이사건을 지휘해온 서울지검공안부 최대현 부장검사는 20일 "죽은 정인숙(26) 여인의 오빠인 운전사 정종욱(34) 씨를 살인혐의로 입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마지막 으로 화약반응을 검출결과와 병세가 좋아지는 대로 구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19일밤 정씨를 철야심문한 결과 거의 진범으로 단정했는데 살인동기를 죽은 정양의 재산과 동생의 운전사로서의 「콤플렉스」로 인한 오래전부터의 계획된 것이었다고 보고있다.

오빠 정씨가 사건이 일어났을 때 40세 가량의 괴한이 차를 멈추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은 거짓이며 제 3의 탑승객은 없는 것으로 보고있다.

한편 경찰은 19일 하오 사건 당일 자가용 앞좌석 밑에 떨어진 가죽장갑과 웃 저고리소매에서 "화약반응이 나타났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에 따라 20일 새벽 1시경부터 정씨가 입원하고 있는 「세브란스」339호실에서 임상심문 끝에 범행일부를 자백받는데 성공, 상오 7시경 정식으로 조서를 꾸미려고 1문 1답을 하려하자 정씨는 자백을 뒤없고 "기억이 없다" "잘 모르겠다" "몸이 아프다"는 등 횡설수설 범행일체를 다시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진범으로 단정, 범행동기를 정씨에게 추궁하게된 것은 ①항상 돈 때문에 고민해왔고 ②자기 누이동생의 운전사로 일하면서 열등 의식을 느껴왔으며 ③동생이 오빠를 무시하는데 대한 보복의식 등으로 보아 일단 오빠의 범행으로 추정했다.

정씨는 권총출처와 범행경위, 권총유기에 대해서도 전혀 입을 열지않고 다만 정씨가 "내가 죽였다"는 자백만 얻었을 뿐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방증은 뚜렷이 얻지못하고 심경변화를 기다리고있다.

또한 경찰은 죽은 인숙 양의 「비닐」수첩에서 재계인사, 정부고관, 외교관 등 26명의 명단과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메모」와 명함도 발견, 상당한 인사들과 접촉이 많았던 것으로 보고 과거의 행적을 극비리에 수사하고 있다.

 양가서 자란 오누이가

강변 3로 살이사건주역들의 행적
수수께끼의 여인
가짜대졸 이름 고쳐 남성 편력
얼굴 「마담」하다 이유도 몇번
까닭모를 이·재혼
고고 때 자원 입대 세번 탈영
나쁜 교우로 성격 비뚤어져...

죽은 정인숙 양
정인숙 양의 정체와 배후관계는 범행자체보다 더 깊은 "무엇인가 있는 듯"싶은 인상이 짙어 이를 쫓고 있는 수사진과 보도진을 걷잡을 수 없는 의문속에 휘몰아 넣고 있다.

우선 관할파출소에 기록되어 있는 인숙 양의 인적상항에는 「외교관」으로 되어있으나 외교관으로 파악된 인숙 양의 행적은 국내주요 고급호텔을 상대로 복잡한 남성편력을 일삼은 방탕성으로 점철되어있다.

호구조사에서 학력은 이대졸업으로 되어있으나 대학 당국은 "재학한 사실조차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며 지난 68년 8월 여권을 발부받아 「캐나다」에 간 것으로 알려진 사실도 이를 실제 확인할만한 주요 「파일」이 외무부에 남아있지 않아 의문속에 싸여있다.

정양의 본명 역시 처음에는 김지였던 것을 68년 8월 인숙으로 바꾸어졌으며 이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속을 잘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했다.

특히 4년전에 낳았다는 아들도 그 자세한 관계가 풀리지않아 동네사람들에게는 조카 라고만 알려져 왔다.

한편, 수사의 초점을 모으고 있는 인숙 양 자신의 행적은 더욱 아리숭한 「베일」에 싸여있다.

45년 2월 13일생 행방동이인 인숙 양은 정규대학 교육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면서도 일어영어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이 구사해 외국인 통역일을 맡기까지 했는가하면 뚜렷한 직업과 수입원이 없음에도 싯가 7백만원짜리 2층 양옥을 비롯해 거액의 현찰과 각국 수표 및 지폐 미·일화 등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이번사건의 말없는 목격자인 「코로나」택시까지 사들여 자기 친오빠를 운전사로 고용, 통금후에도 차를 타고다녔으며 운전사인 친오빠도 그 자세한 행각과 접촉인물 및 용건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베일」에 싸인 인숙 양의 표면행각은 비교적 파악하기 쉬운 남성편력의 방탕한 여자형으로 되어있다.

보기드문 미모에 1m 65cm를 넘는 늘씬한 몸매를 지닌 인숙 양은 한 때 「혜련」이라는 가명을 갖고 모 비밀 요정에서 고위인사들에게 「얼굴마담」으로 널리 알려져 인기를 모았으며 최근에는 「사보이」호텔과 「타워」호텔을 자주 드나들며 20여명의 국내 저명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남성편력을 일삼아왔다.

그러나 인숙 양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이 표면적인 행각의 밑바닥을 구체적으로 알려줄만한 핵심적이 정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얼핏 보기엔 바람난 양가집 딸이 발을 잘못들여 놓아 고급 「콜걸」이 된 것 같은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으나 수사진까지 당황 시키고 있는 그의 엇갈린 과거기록은 보다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어떻든 이번 살인사건은 피해자인 한 미모의 여성의 과거행각이 마치 풀어보기 힘든 초상화처럼 「클로즈업」되어 국내 살인사건 수사기록사에 일찌기 없었던 「에포크」를 남겨놓을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오빠 종욱 씨
정양의 오빠 정종욱(34) 씨의 신원이 19일밤 경찰수사에서 밝혀졌다.

사건당시 차를 몰았던 정씨는 고교시절부터 비뚤어지게 자란 부유한 집안의 말썽꾸러기였다.

아버지 정도환 씨가 대구 부시장으로 있던 자유당 말기에 대구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나쁜 치구들과 사귀게 되어 성격이 비뚤어지기 시작, 졸업도 하기전 2학년 때 해병대에 뛰어들었다.

군에 입대한 후 더욱 성격이 괴팍해져 탈영을 3번이나 했고, 재입대 할 때는 역종을 바꾸어 통신병으로 재복무, 그럭저럭 제대를 하면서 부모들의 애도 많이태웠다.

제대한 후에도 정씨는 하는일 없이 집에서 놀면서 형의 「오토바이」라디오 등을 닥치는 대로 팔아먹는 등 집안의 골칫거리로 변했다.

때로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하는 정씨는 65년 8월에 첫부인 김모여인과 연애결혼했다가 작년에 이유없이 김여인과 합의 이혼을 하고 즉시 현재 부인 고모여인과 재혼했다.

군에서 배운 운전기술로 자동차 「부로커」회사인 중앙공사에3년 근무하다 지난 연말 그만두고 놀다가 지난달 죽은 인숙 양의 운전사인 오모씨가 그만두자 동생의 자가용 전용운전사로 채용되었다는 것, 월급 2만원~3만원,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있는 정씨는 이날 처음으로 인숙 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말없이 눈물만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