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노래 (공모)

아버지 아버지! 오늘밤은 왜? 이리도 당신이 보고싶은지요....!!!??? 앞 논 개구리의 합창소리에 잠이 깨여 밖을 나와보니 마당 가득 그윽한 백합의 향기는 초 여름밤 시선한 공기와 잘 어울려져 지난 시절을 회상케 하는군요. 아버지! "아버지의 노래를" 공모한다는 방송을 듣고도 저는 가고 안 계시는 당신이기에 글을 써보려고도 생각지 아니했는데 오늘밤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 보고프고 그리움이 가슴 저 깊은곳에서 밀물처럼 밀려옴에 나도 모르게 눈물로 이 글을 쓰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의 영전에 받쳐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버지! 하고 목놓아 불러봐도 당신의 대답은 없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나의 목소리만 메아리되여 내 귓전에 맴돌아 어둠을 깨는 이 밤 단신과 조용히 대화를 나눌까 합니다. 아버지! 당신의 모습은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헌출한 용모에 모시 두루마기에 의관을 갖추시고 학식도 풍부한 나에 아버지 분명 친구 아버지와는 달랐습니다. 딸만 내려 일곱인 우리집은 그 많은 딸들한테 한번도 한부로 대하지 않고 직접 내주고 풀어보라 하시면서 아버지께서는 안써보면 잊어버린다고 한문 글씨를 꼭 연습하시던 당신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는 존경스럽고 엄하신 그 모습으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달들이 많아서 유난히도 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인자하기보다는 너무도 어려운 분. 아침 밥상에 딸 하나만 안 보여도 딸 단속을 어떻게 하냐고 어머니를 호되게 호통치던 그때 그 아버지는 싫었습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친구집에서도 자고 싶었고 아버지한테 격식 갖추어 존대말하지 않고 그냥 반말하는 친구들이 부렵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여자의 삼덕을 가르쳐주시던 정말 옛 양반 집 선비의 모습, 그 자체였지요. 그렇게 엄하시면서도 당신의 사랑은 표현하지 않고 당신의 깊은숨은 뜻을 몰랐던 내 유년시절. 추운 겨울 어느 날! 형제중에 유난히도 작고 약하던 나에게 난생 처음 추운데 언제 걸어가냐면서 자전거 뒤에 앉혀 학교까지 데려다 주실 때 나는 너무도 기뻤고 도한 무척 놀랐습니다. 언제나 묵묵히 지켜만 보시던 아버지께서 애정표현을 행동으로 옮기셨기에 그때 많은 등교길 아이들이 자전거 뒤에서 아버지를 꼭 껴안고 추운 바람을 아버지 등뒤에 숨어서 피하는 내 모습을 한없이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친구들 눈망울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때 자전거에 저를 앉히면서 "떨어질라 꼭 잡아라"하시던 아버지 너무도 어려워서 아버지 허리를 못잡고 차디찬 쇠붙이 손잡이를 꼭 잡았을 때 내 손을 당신의 허리에 잡혀주시던 따뜻한 손길을 난생처음 느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사업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우리 가정에 닥쳐왔어도 한번도 절망하거나 흔들림 없는 당신의 모습을 보이며 남한테 도움이되면 되었지 페끼치거나 더욱이 비굴하게는 살지 않던 당신의 모습을 존경합니다. 제가 시집오기 전날 밤!!! 당신께서 저를 불려 앉혀놓고 하셨던 그 말씀이 그때는 무슨뜻인지 몰랐습니다. " 순자야.. 내가 너를 네 엄마 중풍으로 쓰려져 거동을 못하니 네 엄마 살아 생전 너희들을 출가시키려고 서둘렷다. 홀 아비딸이라는 소리 안들으려고 서둘려 너를 보내려고 한다. 네가 상대가 맘에 않들어 하는지도 안다,. 하지만 내가 당부하고픈 말은 남편이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마당에 우뚝 서있게 하지 마라. 너는 몸이 약해서 촌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는 계산이 빠르니 상업하는데로 보낼려고했지만.... 네 엄마 때문에 서둘려서 농촌으로 보내게 된 것이 서운하군아. 여자는 부모를 떠나면 출가외인이라 시댁을 섬겨야 되고, 또 네가 잘 살아야 나를 도와주는거다." 하시던 당신의 뜻을 정말로 몰랐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 50이 다되어 이젠 그때 아버지께서 하시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중풍으로 쓰러진 엄마대신해서 한달에 딸 둘을 출가시키면서 혼수장만을 손수하시고 실, 바늘까지 꼼꼼히 챙겨서 봇다리 봇다리 싸서 보내시고 결혼식장에 참석도 안하시고 하루종일 잠만 주무시던 당신의 깊은뚯을 그대는 왜 모르고 원망만 했을까요. 늘 내가 마음에 걸린다고 입버릇처럼 하셨던 그 말씀의 듯을 이제야 깨달았으니 저는 정말 바보였나 봅니다. 마음에 없는 결혼을 시켜놓고 늘 불안했던 당신 마음! 행여 뜻안맞아 남편과 헤어질까봐 출가외인이니 시댁을 섬기라고 강하게 가르쳐주시느라 아버지를 찾아가도 한번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고 퉁명스럽게 "뭐하려 왔어? 나 혼자 밥 끓여 먹는 것이 더 편혀 오늘밤에 자고 내일 아침 첫차로 가!! 시집간 놈은 그 집에서 잘 사는 것이 나 도와주는거라니까" 했던 당신의 말씀이 귀에 못이 박혔습니다. 아버지!! 지금은 남편과 싸우면서도 잘 살고 있으니 아버지 이제는 제 걱정하지 마세요. 선보고 3개월만에 저를 보내놓고 밤낮으로 근심했던 당신의 뜻을 이제야 깨달고 보니 아버지는 엄마따라 저 세상가신지 너무도 오랜 세월이 되어버렸네요. 저도 자식을 남에 집에 보낼때가 되니까 이젠야 아버지 뜻을 깨잘아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훕칩니다. 아버지 이젠 편히 쉬세요..... 저 잘 살께요...... 아버지의 항상 작은 셋째 딸 순자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