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다시 나눌 수 없는 정

안녕하세요. 저는 고려대학교 국어 국문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김윤경이라는 여학생입니다. 저의 고향은 진안 상전이구요, 지금도 부모님께서는 그 곳에 살고 계신답니다. 방학이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도 하고 운전면허를 따려고 아직 집에 내려 가지 않고 있답니다. 다름이 아니구요... 이렇게 웹상으로 나마 우리 지역 방송에 저의 고향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 저희 집은 진안군 상전면 수동리 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금 상전은 용담댐 수몰로 인해 더이상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마음속 고향이 된지 어언 5년째 입니다. 할아버지에 할아버지.. 조상대대로 터를 닦아 살아 오던곳. 전국에 흔하지 않은 '사천김씨'의 집성촌이기도 했기에 140 여채 되는 집들중 거의 모든 집들이 친인척 관계를 이루면서 니것 내것없이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곳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고추농사와 벼 담배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왔고, 여느 시골마을처럼 젊은 사람들 보다는 윗어르신들이 많았으며, 그저 정이 많고 인심좋은 그런 마을이었습니다. 그래도 '상전면 면소재지'라는 이름하에 전 직원이 다섯명뿐이지만 작고 아담한 우체국과 어르신들이 말씀 하시는 조합. 농협이 있었으며, 동네 아저씨들처럼 아주 친근한 순경아저씨들이 근무하는 지서. '면'이라고 불리워지던 면사무소와 예쁜 박양이모와 황양이모가 근무했던 보건소... 제 기억속 가장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전교생이 60명밖에 되지 않았던 상전국민학교.. 모두가 덧없이 소중하고 귀했던 마을의 자랑이었으며, 항상 마을과 같이하는 없어서는 안될 것들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했고, 정을 주었으며, 그 정이 있었기에 그 어떤 일이든 하나가 되어 합심하여 일을 치러 나갔고, 내집 네집 할것 없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밥 한끼 같이 하고, 물 한모금 나눠 먹으면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맘때 쯤이면 세동댁 할머니께서 가져오신 방금 한 보리밥에 우리 텃밭 에서 갓 뽑아온 여리디 여린 열무잎을 슬슬 물에 몇번 헹궈내고 손은고 쓱쓱 짤라내어 커다란 다라이에 넣고 보글보글 끓인 애호박이 송송 썰린 된장찌개와 고추장을 퍽퍽 넣고, 이리한번 저리한번 뒤적뒤적 밥을 비빈다음... 지나가던 사람들 다 불러 세우고, 아래 웃집 할머니 아주머니 담벼락에 까치발 들고 서서 "아이~~이리와 보리밥 먹어~~"소리질러 오시게 하고 엄마 따라온 어린아이 큰 아이 할것 없이 다 모이면 어느새 우리집 주방은 발 디딜 틈이 없고, 여기저기서 다라이를 향해 오는 숟가락은 쉴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해서 뜨거운 여름날 점심 한끼 뚝딱 해치우고 나서 아줌마들 수다 한자리 떠시고 나면 벌써 다시 일하러 갈 시간이 되고.. "잘먹었어 다음엔 우리 집으로 와.."말씀하시고는 다들 논 밭 비닐하우스로 나가십니다. 이랬던 우리 마을인데... 경운기 소리, 트랙터 소리, 소 울음, 개 짓는 소리.. 한적했던 이 마을에 어느날인가 댐이 들어 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결국 소문은 진실이 되어 우리 모두를 고향에서부터 각각이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서울 큰아들네로... 전주에 아파트를 사서... 대전에 가게를 사서.. 진안에 주공 아파트로.. 우리에게 나라에서 쥐어준 것이라곤 땀과 범벅을 이뤄 일구어낸 논, 밭을 다 파 헤쳐 놓고 그 위에 대형 다리를 세운 대신 몇푼의 돈과.. 새까만 내 가족의 손떼가 묻어있는 내 집을 단 10분만에 중장비로 부셔 버리고 준 집값.. 봄이면 하얀 꽃을 피워내던 벗나무 이맘때쯤이면 한창 주렁주렁열릴 과일나무... 이 모든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주고는 곧 나가라는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 마을 사람들은 원치 않는 이별을 해야 했고, 평생 농사만 지을줄 알고, 삽 괭이 자루만 다룰줄 아시던 분들이 지금은 저 아스팔트 도시속, 마치 닭장처럼 갑갑한 똑같은 모양새의 아파트 안에서 도시 생활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갑갑해 하며 고향만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습니다. 세상은 돈이 우선이 아닙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고향에서 다시 나눌수 없는 정.. 그 정을 우리는 이제 어디서 나누어야 될까요? 점점 물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내가 살던 마을이.. 내 고향이.. 내가 뛰놀던 학교 운동장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이제 저 깊은 물속으로 잠기고 있습니다. 고향에서 다시 나눌 수 없는 정... 이렇게 더운데 도시 한복판에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요? 오늘따라 유난히 내 고향이.. 우리 마을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 진안군 상전면 수동리 1079-1 432-9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