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가신지 4번째 맞는 생신이네요
평소에 늘 즐겨 입으시던 옥색 한복 한 벌 했는데 비가 오네요
엄마..없는 솜씨지만 소고기 미역국도 끓이고 팥찰떡도 하고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홍시감이랑 놓고 있는데
"우리 막내딸 애썼네" 그소리 한마이 안해주시네요
엄마 산소에만 오면 비가 오는게 가슴에 한이 많아서 흘리는 엄마의
눈물인가요?
지금같으면 시집 갈 생각도 못할 17살 선도 제대로 못보고 시집을
가서 첫날밤에서야 신랑 얼굴을 봤다죠..
그래도 그렇게 사는가 보다 하고 없는 살림 일으키려고 낮에는 논으로
밭으로, 밤에는 시어머니가 시킨 삼 삼는일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신랑 옆에 가면 시어머니가 가운데 누워서 주무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러기를 삼 년 논도 사고 밭도 사고 했는데..
시어머니가 애 못 낳는다고 어디서 여자를 데려와서는 엄마를 시어머니
랑 같이 자도록 했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그 꼴은 못 본다고 엄마를 데려왔는데 신랑은 엄마를
좋아했는지 따라와서 논 두마지기를 사주고서는 가끔씩 들르며 언니와
나의 아버지가 됐습니다
엄마는 시골에 있으면 우리가 교육을 못 받는다고 도시로 나와서
무거운 그릇을 머리에 이고 시골동네 이집 저 집 다니며 쌀도 받고
콩도 받고 팥도 받아서 팔아버린 그릇만큼이나 무거운 잡곡을 이고는
오셔서 항아리마다 채워 놓으시고는 "이거면 우리 딸들 올겨울은
무난히 나겠다" 하시고는 흐뭇해 하셨죠..
장사를 하시면서도 외상값,그릇값 셈하는 게 주산으로 하는 우리보다
훨씬 빨랐던 엄마가 가시기 몇 달 전에는 몹쓸 치매에 걸리셔서 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셨어요. 날마다 밖으로만 나가셔서 행방을 모른 채
밤도 지새봤고 언니랑 저랑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래서 결국 생각해
낸 게 엄마를 가두는 거였어요.
꺼내달라고 애원도 하고, 욕도 하고 그러셨는데...
그렇게 3개월을 사셨죠..
가시는 날 아침에는 "우리 딸들이 엄마를 잘못 만나서 고생많이했다
고마웠다.선산에는 어쩔 수 없이 묻히지만 작은집 아들 손에 제삿밥
얻어먹고 싶지 않으니까 사위한테는 미안해도 딸들 손에 먹고 싶다"
그러시고는 너무도 허망하게 눈을 감으셨죠.
만약 딸들이 아팠다면 평생이라도 잘하셨을 엄만데 그 짧은 기간을 못
견디고 ..엄마 미안해..
다음에 엄마 옆에 가면 용서 빌께..
어쩔 수 없지만 엄마 가뒀던 거....
이렇게 비오는 산소에 와서 무릎 꿇고 울어도 다시는 살아계신 엄마
손길 한 번 ,목소리 한 번 들을 수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