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이..."
"아이고이..."
그저 그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우리동네 아저씨.
몇 년 전인지 중풍으로 쓰러져서 거의 회복이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가족들의 기도와 수많은 노력덕분에, 지금은 그나마 한쪽발로 겨우겨우 버티면서 지팡이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하실 수 없으시니 어디든지 가더라도 대화할 상대가 없고, 그저 웃으시면서 할 수 있는 단 한마디의 대답으로 모든 말을 대신합니다.
"아이고이..., 아이고이..."
처음엔 그 말이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듣고 자주 듣다보니 이젠 그 아저씨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린 것 같습니다.
똑같은 "아이고이.."지만 아저씨의 표현방법에 따라 그 말의 억양이나 말의 길고 짧음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너무 고마워서 할 때와, 혹은 즐거워서 하는 경우, 또 하나는 뭔가 맘에 들지 않았을 때 하는 말투가 달라지더라구요.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다른 하고 싶은 말들이 많으실까 하고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내 눈엔 이유없는 이슬방울이 맺힐 때가 있습니다.
내가 그 분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그 분의 심정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다 보니 이젠 어느정도라도 그 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연히 시장에 다녀오다 관광단지 근처로 돌아서 오는데, 애기아빠가 갑자기 우리동네 아저씨를 발견하고 내게 물었습니다.
"저 분 골목집에 그 아저씨 맞지?"
"어머나, 맞아. 그런데 언제 이렇게 멀리까지 오셨지? 다리도 불편한데..."
"오늘처럼 이렇게 추운 날에 운동하다고 여기까지 오셨나보다."
누군가 아저씨를 향해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이 없고, 그 아저씨의 불편한 다리를 위해 옆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 한 명 없었습니다.
쌀쌀한 겨울의 문턱에 서서 옷깃을 여미느라 바쁜 사람들 틈사이로 힘겹게, 겨우 비뚤어진 다리 한 쪽을 지팡이로 버텨가며 절뚝절뚝 걸어가시는 그 아저씨의 뒷모습이 그날처럼 쓸쓸해 보일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저 아저씨 가족들은 뭐하는거래? 좀 모셔가지 않고..."
"아니, 어쩌면 저런 운동이 아저씨께 더 필요한 지도 몰라. 하루종일 방 안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계시는 것 보다야, 차라리 환경속에 스스로 견뎌내는 방법을 터득하시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잖아."
홀로서는 방법!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고, 어느 누구도 말 한 번 걸어주는 사람이 없다지만, 스스로를 챙기면서 나 자신을 아껴가며 지금 현재 처한 상황을 인정하면서, 이 험한 세상을 아저씨 혼자 힘으로 이뤄내는 모습이 진정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때로는 갑자기 찻길에 뛰어들어 길을 건너시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심장이 금방이라도 멎는 것 처럼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을 때, 도와줄 그 어느 누구도 없을 때 그런 일들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그 아저씨는 스스로 몸을 보호하고 지켜내야 합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팔도 한 쪽밖에 쓰지 못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아저씨를 대신해서 살아줄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아이고이.., 아이고이..." 너무나 기쁘게 웃으시면서 우리부부를 맞이하시는 그 아저씨의 미소가 씁쓸했던 우리 마음을 밝게 비춰줍니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어 날마다 머리가 아프고, 숨이 막힐 듯 답답한 상황에서 웃을 일도 없었는데, 그 아저씨의 웃음 덕분에 우리부부도 함께 웃었습니다.
"아저씨, 이렇게 추운 데 뭐하러 이렇게 멀리까지 나오셨어요, 운동하시려고 나오신거죠?"
"아이고이..."
"저희가 모셔다 드릴께요. 너무 추워요, 그러니 오늘은 운동 그만하세요, 괜찮으시지요?"
"아이고이...."
코가 흘러 얼굴은 지저분하고, 옷은 썰렁하니 몸도 차갑고, 어디에 넘어지셨는지 바지엔 온통 흙 투성이고, 나는 아저씨 모르게 얼른 눈물을 훔쳤습니다.
만약에 이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였다면...
작년 김장철에 김장을 하고 있는데 아저씨께서 우리집을 지나가시면서 내게 자꾸 이상한 행동을 보이셨습니다. 뭔가 필요한 게 있다는 뜻 같은데, "아이고이"밖에 안하시니 알아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한참을 생각하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아저씨 옆에 있는 다른 동네 아저씨께서 커피를 종이컵에 마시고 계셨습니다.
아하, 아저씨도 커피를 드시고 싶으신가 보다 싶어 나는 얼른 집으로 들어와 따뜻한 한방차를 한 잔 탔습니다. 내게 차 한 잔만 달라고 부탁하시는 아저씨의 마음이 고마워서, 또 감사해서 기뻤습니다.
처음엔 그 아저씨를 굉장히 무섭게 생각했습니다. 키도 크시고, 손도 크고, 말씀도 잘 없으시던 아저씨였는데, 지금은 우리만 보면 웃으시고, 우리만 보면 손을 흔들어주시고,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해 주시는 아저씨.
이젠 그 아저씨가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때론 울게도 합니다.
열심히 운동하시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바닥에 앉아서 어린아이처럼 너무나 편안하고 순박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에도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각박한 인심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천사의 미소를 보고 있으니까요.
그 아저씨께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를 위해 그 천사의 미소를 보여주시기를 기도해 봅니다. 아저씨,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