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핑계

졸리운 눈을 비비면서 어렵게 버티는 아줌마의 봄 날이 슬픈 오늘이다. "또 자냐, 또 자?" 아니, 그러는 자기는 낮잠을 안잤나? 남편의 잔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내들은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편과 애들 뒷바라지 하느라 잠 들 시간도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저리도 많은지..., 그냥 지친 아내들에게 이부자리를 펴주면서 "자기 피곤한데 한 숨 자고 일어나지?"하며 배려를 해 주면 안될까? 뱃살 나온다고, 허리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고, 엉덩이 쳐진다고 무슨 이유들을 그리 많이 달고 낮잠을 방해하는지 모르겠다. 주방에 쌓여있는 설거지, 세탁기에 탈수되어 있는 빨래 몇 가지, 애들이 벗어놓은 구깃구깃한 양말과 겉옷들... 우와, 정말 아내의 하루는 왜 그렇게 바쁘게 스케줄이 잡혀 있는지. 행복을 꿈꾸며 지금의 남편을 선택했다. 날 위해 모든 일을 척척 해결해 줄 것 같던 남편, 물론 지금까지 살아보니 역시 부족한 나를 위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배려해주는 남편의 마음이 고맙고 감사했다. 하지만... 날 위해 설거지도 안해주고, 날 위해 애기를 대신 낳아주지도 못하고, 그런 남편에게 당연한 핑계를 둘러대며 엉뚱한 아내의 불만이 시작된다. "당신이 벌어다준 생활비 좀 지갑에 가득 채워봤으면 좋겠네요." "당신하고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풀코스 한번 먹어봤으면..." "당신한테 생일 선물로 무거운 보석반지 하나 받아 봤으면 좋겠어요." 상상만 해도 정말 배부른 행복이었다. 매일같이 몇 천원에 절절매고, 몇 만원이 없어 애들 학원비를 걱정하고, 십만원 때문에 울어야 했던 아픈 기억들이 모두 사라지는 듯 갑자기 행복한 상상이 멈추지 않았다. "나도 이젠 드레스 한번 입어봐야겠어." "우리 애들 정장을 입히고, 우리 공주는 화사한 드레스 입혀야지." "리모컨으로 시동까지 켜지는 새 차에 우리 애들 태우고 여행가야지." 때론 초라하면서도 때로는 꼭 해 보고 싶었던 일들인데, 지금 내 현실에선 그저 꿈이라고 접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난 또 당연한 핑계를 대신해서 그 아픔을 달래련다. "이게 다 당신이 무능력한 탓이라니까. 제발 돈 좀 왕창 벌어요." 우리 남편이 무슨 초능력 수퍼맨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뚝딱 부자남편이 될 것도 아닌데, 무슨 일만 있으면 그렇게 당연한 핑계를 쏟아대니.. 대한민국에 나같은 아내가 또 있을까 싶다. 절대 없을테지. 배부른 상상에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아자, 아자, 아자! 내일을 향해 열심히 살자. 우리 모두 힘차게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