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쇼, 그 후일담

안녕하세요. 성탄절엔 참 포근했는데, 새벽부터 눈이 내린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어요. 여성시대 진행자 및 청취자분들도 감기 조심하셔야겠어요. 저는 시방 감기라는 손님을 맞고 있답니다. 코가 맹맹하고 골치가 찌끈거리니 영락없이 감기가 제 몸을 자기의 처소로 삼고 있나 봅니다. 아까는 제가 만든 감잎차를 마셨답니다. 하지만 감잎차 만으로는 감기와의 이별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뜨거운 생강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답니다. 저는 편지 쓰기 대회 이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답니다. 워낙 과묵한 편이라 주위 분들에게 수상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방송을 듣고 지인들이 확인 겸 축하 전화를 주더군요. 대상을 받은 게 아니여서 제 스스로도 드러내기가 참 쑥스러웠답니다. 제가 예전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생활에 쫒기다보니 책 한줄 읽기가 버거울 때가 많았지요. 이런 제 생활에 대한 반성 겸 자격지심이었겠지요. 받은 상금으로 주위 분들에게 근사하게 턱을 내도 좋겠지만, 저는 제 통장에 고스란히 모셨놓았답니다. 먼 훗날 '하늘마당'이 완성될 때 휘파람을 불며 현판을 거는 제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아마 소복소복 내리는 눈송이를 닮아 있을거예요. 그 상금으로 '하늘마당'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현판을 만들 때 비용으로 쓸 작정이랍니다. 현판은 목영이 아빠한테 부탁할 거고요. 목영이라는 아이는 제가 작년 이맘때 한달 정도 돌봐줬던 아이예요. 터를 팔아서 엄마가 병원과 조리원에 있을 때 계숙님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아인데요. 참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다섯살바기 꼬마예요. 아빠는 하루종일 나무와 얘기하고 나무의 살을 만지고 나무를 껴안고 다니는 목수입니다. 어찌나 솜씨가 좋은지 식탁이든 장농이든 숲의 비밀 얘기가 잔잔히 새겨진 것 같다니까요. 며칠 전에는 목영이 동생 초영이의 돐 잔치가 있었는데, 흙과 인형한복과 나무토막과 지구본을 돐상에 올려놓은 장본인이예요. 장차 자라날 딸 아이가 의식주에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여자 목수가 되는 것도 좋다고 하시는 신선한 발상의 소유자라니까요. 초영이는 지구본을 집었는데 세계방방곡곡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어도 좋다네요. 이런 분에게 하늘마당의 현판을 맡겨도 괜찮겠지요. 아마 하늘마당을 완성하려면 이 분의 섬세한 손길이 곳곳에 필요할 거예요. 참 돐잔치 선물로는 아빠가 만든 나무도마와, 엄마가 황토 염색해 박은 무명 무릎 덮개였어요. 이만하면 생태적인 안목을 가진 분같지 않으세요? 바쁜 직장 생활 틈틈히 빨갛게 노을을 품고있는 단풍숲을 걸으며, '하늘마당'하고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답니다. 물론 마음의 편지지만요, 하지만 늘 제 곁을 지켜주는 친구같다니까요. 이년 후에는 땅을 매입할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올 겨울엔 좀 여행을 떠날까 해요. 작고 아담하지만 굴곡의 삶을 견뎌낸 농부들의 집을 꼼꼼히 살펴볼 생각에요. 저희 외갓집이 임실 정월리 구숫골인데 지금도 외할아버지께서 쓰시던 집이 남아 있답니다. 외양간은 없어졌지만요. 장작불을 때던 부엌의 무쇠솥과 살강도 그대로거든요. 옛날 분들의 생활 방식과 현대인의 생활방식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가 제 고민거리랍니다. 조만간 구숫골도 가볼 작정이예요. 구숫골 이장님댁인 이태근님 집에서 하루 묵으며, 일년동안의 묵은 피로는 뜨끈한 온돌에 다 지져버릴꺼예요. 학원에서 이제 돌아온 아이가 밖에는 함박눈이 춤을 춘다고 하네요. 함박눈이 날리는 날에는 화롯불에서 군밤 구워먹던 어릴적 생각이 나네요. 어릴적 추억의 문화 코드를 찾고 싶으신 분, 몇년 후에는 제 '하늘마당'으로 초대하께요. 아무도 밟지 않은 숫눈길을 걸으며, 혼자만의 발자욱을 찍으며 오세요. 가슴까지도 따뜻하게 할 군고구마와 군밤으로 환영회를 하겠습니다. 참 제가 만든 꽃차도 대접해드릴께요. 어떤 꽃차가 좋을까요. 노오란 생강나무꽃차는 몸을 따뜻하게하고 감국은 머리를 맑게 한다니 다 눈 내리는 겨울 밤에 좋겠지요. 솔잎을 깔고 제가 염색한 황토이불을 덮고 잔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생태숙면이 될거예요. 가을에는 감을 한 일곱 접정도 깎아 곶감을 만들었답니다. 햇볕도 잘 안드는 아파트에서 가능하냐고 하실지 몰라도 말랑거리면서 쫄깃한 곶감이 만들어졌지요. 시골 외갓집에서 쌓은 내공이 얼만데요. 제가 이끄는 산야초 회원 몇분도 같이 만들었는데 너무 맛있다고 좋아들하시더라고요. 물론 제가 만든 곶감이 훨씬 분이 많이 나고 갈색이어서 전통적인 곶감 냄새를 풍겼고요. 그래서 내년에는 다들 곶감을 만들어 보겠다고 결의를 다지신 분들도 계셨고요. 도시에서 살면서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 그리 어렵지만은 아닌 것 같네요. 자기 마음 한 가운데에 '하늘마당' 같은 꿈터를 키우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사람이 산다는 것 참 별거 아니더라고요. 더불어 사는 존재더라고요.이번 김장철엔 정말 눈 코 뜰 새 없었다니까요. 제가 화학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도 맛깔스러운 맛을 내는 데 일가견이 있답니다. 한 5년전부터 한울생협이라는 유기농 매장에 홍시김치를 선뵈었는데, 한번 맛본 분들이 지금까지 쭈욱 홍시김치를 고집하고 계신답니다. 그래서 저를 김장 코치로 초빙해가느라고요. 저의 조언을 양념으로 팍팍 집어 넣기 위해서죠. 저의 손맛을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기꺼이 달려갈 용의는 있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올해도 아듀를 고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모든 분들이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기를 기원하께요. 저도 내년에는 좀더 치열하게 살고 싶답니다. 먼지의 놀이방이 된 시작노트에 기름칠도 하고요. 책도 많이 읽고 싶고요. 무엇보다도 들이나 산에 나가 제가 모르는 나무와 풀들에게 신고식을 할 것입니다. 자칭타칭 여성시대 팬 여러분들도 마음 속 꿈의 처소를 찾아 길 떠나는 한해가 되기를......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