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장마가 끝나고 나니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담장위의 호박넝쿨도 한낮엔 맥을 못추고 널부러져 있다가 새벽녘에야 이슬을 머금고 되살아 나곤 하는 때입니다.
일주일 후면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게 되는데 여러분 자녀들의 얼굴빛이 어떤가요? 숙제를 다 해가니까 마음이 편해 밝은 얼굴인가요? 아니면 일기도 다 쓰지 못해 울쌍인가요?
"다정이 일기는 꼬박꼬박 잘 쓰고 있겠지?"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일기 쓰는건 정말 힘든일인가 봅니다.
한달쯤 지났는데 일기는 고작 열흘정도 썼으니 말입니다.
"아빠도 방학숙제로 방학일기 쓰는것 있었어요?"하고 묻습니다.
지금은 쓰고 있지 않지만 학창시절에 쓴 일기장을 모아둔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교 졸업때까지 썼던 일기장 아홉권을 들어 보이며 "이것 봐라. 아빠가 학창시절에 썼던 일기란다" 라고 대답하자 "이구, 많이도 쓰셨네, 제가 한번 읽어봐도 돼요?"
"그럼 되고 말고,
일기장을 뒤적거리다가 한참만에 다정이가 하는말
"아빠는 맨날 죽만 먹고 살았어요?"
"아니. 내가 왜 죽만 먹고 살아? 밥을 먹고 살았지."
"근데 왜 일기장에 쇠죽이야기가 자주 나와요?"
"응 그건 소에게 풀을 삶아 먹이는 것을 쇠죽이라고 하는데, 아빠가 매일 쇠죽을 끓여먹였던 모양이다."
"아하, 그렇구나. 나는 아빠가 맨난 죽만 먹고 산걸로 착각했네"
1982년도 중3때 일기장의 일부를 소개 하겠습니다.
1982년 8월 15일 일요일 흐린후 맑음
일어나자 마자 아버지께서는 내가 해야할 일을 말해 놓고선 여수에 가셨다.
쇠죽을 끓여주고 식사를 하고 TV를 보다가 ...중략...
꼴을 베러 나갔다. 꼴을 베다가 더워서 옷을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중략...
누나가 끓인 팥죽을 먹었다. 중략...
'죽을 먹긴 먹었네'
1982년 8월 16일월요일 맑음후 비
아침에 일어나서 소먹이를 주고 나서 ....고추따러 나갔다.
고추가 빨갛게 익은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참깨를 베었다. 너무많이 익어서 꼬투리가 벌어져 자꾸만 떨어졌다. 아까웠다...
고추가지 2개를 꺾어서 내방에 걸어 놓았다.... 중략..
1982년 8월 17일 화요일 맑음
체력장 원서 쓰는 날이다.
학교에 가려고 옷을 입고 나서는데 아버지께서는 가지 말라고 하시면서 논에 농약을 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중략,,,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다... 중략.
선생님은 농약이 고등학교보다 중하냐고 하셨다. 중략...
1982년 8월 18일 수요릴 맑음
아침에 쇠죽을 긇여주고 나서 식사를 하고 고추를 썰어서 널었다. 중략..
1982년 8월 19일 목요일 맑음
방학도 4일 밖에 남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장에 가시고 나와 재수는 꼴을 베러 들로 나갔다. 중략..
1982년 8월 20일 금요일 흐림
아침밥을 먹고나서 소를 몰고 들로 나갔다.
소를 매어놓고 재수와 같이 꼴을 베었다. 중략...
이십오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남원시 수지면 유암리 199-2 김영수 011-9668-2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