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비는 그만 왔으면 쓰겄어.

어제일이 피곤했던지 오늘 아침에는 여섯시가 되어서야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다른날은 4시즈음에 잠이 깼었는데 말입니다. 비가 내리길래 하우스를 둘러볼겸 해서 차를 끌고 아랫마을로 향했습니다. 물소리가 하도 크게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붉적물이 또랑가득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아랫마을 냇가는 꽤 넓은데도 물이 방방하게 흘러 냇물을 건너기 위해 놓여진 다리를 50여센티만 남겨두고 흘러갑니다. 아니, 언제 이렇게 많은 비가? 집에 돌아와 보니 딸아이의 슬리퍼 한짝이 물에 떠내려가 대문에 걸려 있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수지면민의 날로 정하여 수지 초등학교에서 체육대회및 노래자랑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어서 어제는 마을 분들이 회관에 모여 장만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오늘 아침의 상황은 좀 그랬습니다. 심란. 말 그대로 마음이 뒤숭숭하고 어수선하여 집에 있기도 뭣하고, 학교에 가서 놀기도 그렇고, 들에나가 일도 못할 정도의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마을과 학교와의 거리가 3킬로정도 되기에 짐을 들고 걸어가기는 곤란한 점이 있어서 이장님 화물차에 짐을 싣고 제 승용차로 사람들을 두세번 실어나르기로 하고 처음에 다섯분을 태우고 학교로 가는데 하는 이야기가 오늘 새벽 4시즈음에 비가 하도 많이 내려서 창문만 열어놓고 멍하니 바라보았노라고 말씀하시는분이 있는가 하면 공사하면서 물또랑을 막고 배수관을 너무 작은것을 묻어놓는 바람에 물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논으로 몰려 들어와 다 익은 나락이 모두 물에 잠겼다는 이야기며 하천변에 있는 논의 논둑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어떤분은 논에 방천이 나서 아들이 손보러 온다고 했다는데 걱정이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이미 받아놓은 날인지라 학교에는 많은 면민들이 천막속에서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또한번 마을 주민들을 싣고가 학교주변에 차를 주차 시키고 우리마을 천막을 찾아 갔더니, 이번엔 더큰 걱정 거리가 나돌고 있었습니다. 공사중이던 포크레인이 빗물에 떠내려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세대나. 방천난 논이 걱정이라며 되돌아 가시는 할머니를 태워다 드리고 왔는데, 이번엔 아직 못오신 분이 세분이 있는데 이장님이 전화해서 오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참석하겠다는 분들을 태우러 다시한번 다녀왔습니다. 오전행사는 우천관계로 취소하고 오후 노래자랑과 행운권 추첨은 있을거란 이야기가 있었고, 마을마다 한명씩의 대표참가자를 내고, 노래경연이 시작되었고, 중간중간에 행운권 추첨이 있었습니다.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잦아 들고 오후엔 그쳤다가 다시 내리기를 몇번 하더니 서쪽 하늘에서 해님도 보였습니다. 각 가정에 한개씩 나눠준 행운권 추첨에서 "이번엔 황토 옥매트가 그 주인공을 찾아 합니다. 행운번호는 삼백- 십- 구번" 하니까 우리 마을에서" 저요 저요" 하고 큰 소리가 들립니다. 다정이 엄마가 당첨되어 선물을 받기 위해 본부석쪽으로 뛰어 나가며 좋아서 저요저요를 외쳐댄 것입니다. 여자의 힘으론 들고 오기 힘든 무게일텐데 잘도 들고 돌아왔습니다. 아을주민들은 다정이 아빠가 좋은일을 많이 하니까 복을 받아서 받은거여. 하십니다. 행사를 마치고 동네 사람들을 태우고 한번 왔다가 두번째 실러 가다보니 차 바퀴 한쪽이 이상합니다. 빵구가 크게 난 모양입니다. 보험회사에 긴급출동을 요청해 놓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내가 태우기로 되어있던 분들이 제 앞을 힘겹게 지나 걸어갑니다. 마을 노인분들을 몇번 태워다 드리긴 했지만 마지막에 빵구로 인하여 못태우고 온 순관이와 순관이 엄마 미안해요. 제 옆에 앉으신 내촌댁 할머니가"인자 이걸로 비는 그만왔으면 쓰겄어." 뒤에 앉으신 호산댁 할머니가 "내일 모레는 태풍이 온다등만." 그렇습니다. 우리네 농촌에선 일년 내내 걱정거리속에서 살아갑니다. 봄에는 비가 오지 않아 가뭄걱정 여름에는 너무 비가 많은 장마 걱정 가을에는 익은 곡식 쓰러뜨리는 태퓽걱정 겨율에는 편히 좀 쉬어야 하는 데 눈이 많이 내려 마을길 쓸어낼 폭설 걱정과 날이 추워지면 보일러 많이 돌아 기름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