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밭가에 몇 포기 심어놓은 오이묘가 어느덧 자라 열매를 맺었습니다.
한개를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 오이를 한개 먹는 동안 행복 했습니다. 몇일 전에는 산속으로
퇴비를 하려 갔습니다. 화학비료가 부족한 시절에는 퇴비를 하여 벼농사도 짓고 특히 인삼밭에는 산야초가
꼭 들어 가야 합니다. 지금은 옥수수나 호밀을 심어 어느정도 자라면 로타리를 쳐서 거름으로 사용하지요.
몇다발 하고 나니 온 몸이 땀으로 젖고 가져간 1.5리터 물은 바로 동이 났습니다. 내가 퇴비를 하려 산에
온 것인지 물을 마시려 산에 온 것인지 알수 없습니다. 잠시 그늘에 않아 있으니 30여년전의 일이 생각 났습니다.
내가 중학교를 갓 졸업한 17살때 여동생이 수업료를 내지 못해 울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마침 이웃집 아저씨가
퇴비를 산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하기로 하고 도시락을 싸서 퇴비 넣을 밭이 있는 산으로 갔습니다.
쉬지 않고 열심히 하여 해가 넘어간 뒤에 퇴비단을 세어 보니 16짐이 되었습니다. 한짐에 300원씩 4800원이 되었습니다.
그때 여동생 1기분 수업료가 4,500원이었습니다. 그 돈을 들고 학교에 가던 그 동생의 환한 얼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저에게 퇴비를 하라고 허락 하신 그 아저씨가 지금까지 고맙고 미안합니다.
17살짜리가 하루에 어떻게 16짐의 퇴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빈 지게를 지고 먼 산까지 16번을 오르 내리기도 어려울 겁니다. 어른의 반짐도 되지 않는량을 한짐으로 계산해 주시고 퇴비로서의 효과도 없는 수분이 많은 1년생 잡초를
퇴비로 계산해 주신 그 아저씨는 우리집의 사정을 알고 퇴비값이라는 핑게로 저에게 돈을 주신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웃집에 사시며 눈만 뜨면 만나지만 퇴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자존심 상할까 봐서
그러는 거지요. 해가 뉘였뉘였 할 무렵 퇴비를 경운기에 싣고 마을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외계인 처다 보듯 저를
바라 봅니다. 어저씨 한분은 "허어,요즘에 풀하는 사람이 있네. 그런 정신력이면 못 할일이 없어" 하십니다.
퇴비 몇짐 한것 가지고 과분한 칭찬을 하십니다. 그날 저녁 식사후에 선배님몇분과 친구들을 불러 내어
트럭을 타고 슈퍼마켓으로 가서 시원한 맥주와 소주를 한턱 솼습니다. 왜 술을 사는지 궁굼해 하였습니다.
"내가 오늘 산에가서 퇴비를 했거든 한짐에 10,000원씩 하면 5짐했으니 5만원 벌었지. 부담갖지 말고 많이 마셔"
그날 저녁 술값 17,000원 나왔습니다. 그래도 33,000원 남는 하루였지요. 무더운 날씨와 장마기간 건강유의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