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빨갛게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차가운 바람에 떨어지고 정읍.부안지역에는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집 뒤안과 밭가 감나무에는 홍시가 주렁 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먹거리였는데 지금은 어른도 아이들도 찾는이가 없어 까치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감이 읶어 가는 이맘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150cm 겨우 넘는 작은 체격에 몸이 아파 아랫묵에 누워 있을때가 많았습니다.
힘든 농사일 보다는 손으로 할 수 있는일을 했습니다. 토끼를 기르고 싸리나무 가지로 광주리를 만들고
밭가의 공터마다 감나무를 심어 가을이면 곶감 만드는 일을 하셨습니다.
어린내가 아침 일찍일어나 감을 한 자루 따다 놓고 학교에 가면 아버지는 감을 깎아 처마밑에
주렁 주렁 매달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느 한 해는 시력이 좋지 않아 돋보기 안경을 쓰고 감나무에
올라 감을따시다가 떨어져 오랬동안 고생을 하셨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졌을때는 오래된 인분이 좋다고 하여
몇차례 먹기도 했습니다. 곶감을 만들어 파는 일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웃집의 아저씨가
진안읍의 5일장에 가면 내가 곶감 보따리를 들고 따라가 아저씨가 팔아 주곤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나혼자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보따리를 들고 버스에서 내리면 장사 아주머니들이 몰려 들어 흥정을
합니다. 아주머니들은 곶감이 건조가 덜 되었다느니.곶감이 적다느니. 곰팡이가 피었다느니하며
가격을 깎았습니다. 숫기도 없고 나이도 어린 나는 아주머니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돈을
주는데로 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곶감 판 돈을 아버지에게 내 놓으면 " 아이구 우리 기용이가 다 컷네.
곶감도 잘 파네"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걷으로는 웃으시지만 제값도 못 받은 제가 뭐 대단하겠습니까.
그후 아버지의 건강이 더 나빠져 57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가 심은 감나무가 아름드리가
되어 해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지만 감을 사려오는 사람도 따가는 사람도 업어 밭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심은 감나무를 아들은 포크레인으로 캐버렸습니다. 그래도 한 그루는 남겨 두었습니다.
감을따야 인건비도 되지 않고 무었보다 요즘 아이들은 감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곶감을 만드시던 아버지가 보고 싶어 집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으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