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살고 있는 고향 친구들이 모여 모처럼 죽마고우를 만나러 곡성을 갔습니다. 17번 국도를 달려가는데, 가뭄으로 섬진강 물줄기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산자락도 한 걸음 물러서서 강물이 차오르기만 기다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친구들과 구 곡성역을 다시 찾은 날이 되었습니다. 원래 여행의 목적은 곡성 사는 친구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위문 차 갔었지요. 오랜만에 우리의 방문을 환영한 친구부부가 압록 주변에 게장 백반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면서 안내를 하더군요.
가던 길에 철로를 달리는 자전거(레일 바이크)를 보자 친구들이 모두 우리도 타자고 하데요. 사실 올 봄 벚꽃 축제가 한창일 때 우리 친구들이 진안 마이산 저수지에서 오리배를 타고는 대 만족 했었거든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호기심을 채워야 한다는 의견들이 지대한 친구들입니다. 나이가 들면 더 용감해진다는 것을 아시지요?
점심을 먹던 중 자전거 이야기가 화제가 되어 기차마을을 가보자는 의견으로 발전을 하게 되었어요.
아! 섬진강기차마을 기차 타는 것 쉽게 볼 일 아니던데요. 주말인데다 휴일이 겹친 날이라 출발시간에는 입석도 없더라고요. 예약 하지 않고는 엄두를 못 낼 정도였어요. 승차권을 차지한 승객들의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내 기억 속에 곡성역의 변화는 참 신기할 뿐이랍니다.
고향친구가 곡성 오지리로 시집을 가서 지금까지 주민으로 살고 있지요. 친구가 신혼시절에 미혼인 저를 초대해서 기차타고 곡성을 찾아 갔던 행복한 추억이 있어요. 그때 곡성역으로 마중을 나온 친구와 이야기 하면서 걸어서 친구 집에 갔던 들판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기억 되고 있답니다. 벌써 27년 전 일인데요, 내 추억 속에 곡성역과 들판이 지금의 ‘섬진강기차마을’인 거예요.
우리 친구들은 기차 타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역사를 둘러보기로 했어요. 아직은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레일바이크를 타는 사람들, 꽃이 만발한 정원을 둘러보는 사람들, 분수에서 노는 아이들. 관광객들이 많았어요. 장미동산이 조성 중인데 장미 1004종을 심을 예정이라네요.
친구들은 ‘섬진강천적곤충박물관’을 구경하고 영화세트장까지 구경을 하고 있는데, 비가 한 두 방울 내리기 시작해서 서둘러 기차카페로 갔습니다.
생과일주스를 시켜 놓고 앉아 있는데, 창가로 스쳐가는 레일바이킹을 타는 가족의 행복한 미소가 한 컷의 사진 같았습니다. 마침 새 기찻길로 서울 여수 행 기차가 지나가니까 우리가 기차를 타고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더군요.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기차카페 한 쪽 차창은 빗물 커텐이 쳐졌고, 반대쪽은 비 내리는 풍경이 보이는데 우리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야, 너 아프다고 결석을 해서 우리가 두 되짜리 노란주전자에다 오두개(오디) 따가지고 갔었던 것 기억나냐?”
“몰라 난, 기억이 없는데, 언젠가 서울 사는 윤이가 말하더라.”
우리는 서로 추억 퍼즐 맞추기에 바빴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살던 동네가 달라 추억도 가지각색이더라고요. 남매들도 만나면 자랄 때 얘기를 하면 정말 재미있듯이, 친구들과 유년시절 추억을 나누는 얘기도 참 재미있답니다.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 일행이 놓친 기차가 돌아오더군요. 잠깐 플래트홈이 인파로 일렁였어요. 잠시 한가하던 기차 타는 곳이 다시 막차 시간이 되자 기차는 떠날 시간을 알리는 듯 기적소리 울리니까, 다시 플래트홈이 바빠지더군요. 기차를 향해 달려오는 관광객의 모습은, 예전 비둘기호를 놓치지 않으려던 승객의 모습처럼 긴박감도 느껴졌어요.
친구들 방문이 마음이 아프다는 친구에게 위로가 되었을 거라 믿고, 자주 전화 연락을 하자는 약속을 했지요.
친구들은 막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다음에는 예약을 하고 와서 곡성역에서 가상역까지 기차를 타고 섬진강변을 달려 심청마을을 가보자고 약속을 하고 기차마을을 떠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