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김밥

단무지, 콩장, 장아찌, 김밥...
이름만 들어도 군침도는 이 반찬들은 제 친구들 별명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싸오던 반찬이 그대로 별명이 되었답니다.
그 중 제 별명이요? 저는 '쩌리'였습니다.
요즘 개그맨 중에 '쩌리짱'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던데,
'겉절이'중에 '짱'이라는 뜻이더군요.
그 사람만 나오면 저는 혼자 배시시 웃는답니다.
제가 주로 싸오던 반찬이 바로 '겉절이'였기 때문에
저 역시 '쩌리'라는 별명이 붙었거든요.
처음엔 낯설기만 하던 친구들이
앞뒤 책상 붙여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친해지고
자주 싸오는 반찬 이름을 서로의 별명으로 부르면서
우리들은 단짝이 되었답니다.
요즘 급식세대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겠죠.
우리들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던 친구는 단연 '김밥'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저는 소풍이나 체육대회 때에도
'김밥'을 쌀만한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평소때 도시락으로 '김밥'을 자주 쌀 정도였으니
제게는 그저 부럽기만 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 봄 소풍날,
친구가 커다란 찬합을 들고 온 겁니다.
김밥이라더군요.
내심 기대했습니다.
친구들이 둘러앉아서 먹을 요량이라고 생각했죠.
부끄러운 저의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꺼내지 않아도 되리란 생각에
어깨가 가벼워졌습니다.
헌데 그 친구는 그 큰 찬합을 냉큼 선생님께 갖다드리더군요.
아, 그때의 실망감이란...
이후로 제 마음 속 그 친구 별명은 '배반의 김밥'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아이가 소풍을 가는데 '김밥'재료 사오는 걸 보더니
김밥은 싫다며 볶음밥을 싸달라고 하더군요.
지금 아이들에게 '김밥'은 더이상 '소풍'가는 날이나 먹던
소망의 음식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도 저는 아이 소풍날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싸서는
하루종일 혼자 맛있게 먹었답니다.
'배반의 김밥', 내 친구야, 잘 살고 있겠지?
 
전주시 서신동, 유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