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쭈쭈바

 

무더운 날씨에 갑자기 외할머니가 생각나네요.

어릴 적 저는 몇 년 동안 외할머니 손에 자라야했던 가정사가 있었습니다.

당신 입에 들어가던 것도 도로 내서 줄 만큼

애지중지하던 손녀였는데요.

어느 날 고추밭에 가셨던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한 채 부랴 부랴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큰 소리로 저를 불러내시더니 제 손에 쥐어주시던 건 쭈쭈바.

다 녹아서 늘컹거리는 쭈쭈바를

철없던 저는 마당에 던져버렸습니다.

더워서 짜증이 나기도 했고,

어린 마음에 엄마 아빠를 오래 보지 못해 그리움이 쌓기도 했었던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깊은 사랑은 전혀 헤아리지를 못했던 거죠.

할머니는 흙이 잔뜩 묻은 쭈쭈바를 집어들고

당신 바지에 문질러 닦으시더니

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 거기에 담가놓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언제 다시 소리 없이 밭으로 돌아가셨는지

저는 어느새 낮잠이 들었는데요.

저녁에 고추밭에서 돌아오신 할머니는 제게

50원을 쥐어주셨습니다.

“쭈쭈바 사먹어라.”

나중에 알고 보니 낮에 할머니가 주신 쭈쭈바는

옆집 아주머니가 날 더운데 시원하게 드시라고 건네신 걸,

차마 당신 입으로 넣지 못하고 아끼다가

결국 집으로 가지고 오신 거였답니다.

굽은 허리로 잠깐 다녀가기엔 한참 되는 거리였는데,

거길 걸어오시는 동안 쭈쭈바는 다 녹아버렸던 거죠.

할머니와 쭈쭈바를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나네요.

할머니는 당신 손녀가 엄마가 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치매에 걸려 병원에 계십니다.

이번 주말에는 할머니 계신 병원에 쭈쭈바를 한아름 사들고 가야겠습니다.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에서 박진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