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선물

 

이제 며칠 있으면 저희가 결혼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저에게 결혼은 너무도 소원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 두 분 모두 청각장애를 가진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자라면서 겪었던 어려움도 컸지만

성인이 되어 혼기를 앞두니 말 못할 고민이 되더군요.

보통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힘들겠다며 다독거리고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듯했지만 결혼을 전제로 했을 때는

전혀 다른 사안이 되곤 했습니다. 

신체적인 장애를 가졌다는 것이 무슨 용서 못할 전염병을 지닌 것은 아닌데

꺼려하고 두려워하고 외면하고...

사랑에 빠진 당사자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상대의 부모님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몇 번쯤 그런 일을 겪자 저는 제가 사랑하는 부모님을

그런 불편한 감정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드리는 것이

아주 몹쓸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고 살자, 결심을 하게 됐죠.

지금의 아내는 친구의 동생이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 만난 친구긴 하지만 성품이 워낙 원만해서

금방 서로 친해지게 됐고 속 깊은 얘기도 나누는 사이가 됐죠.

그러다 그 친구가 자기 여동생을 제게 소개시켜 주고 싶다더군요.

웬만큼 제가 맘에 들지 않고서는 못할 일이죠.

그래서 솔직히 제 부모님 얘길 했습니다.

내 부모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함부로 대하는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구요.

그 친구는 걱정 말라고 큰 소리를 치더군요.

그녀와 만나기 시작한 지 백일쯤 되었을 땝니다.

그녀가 선물이라며 조그만 박스를 내밀었습니다.

제 선물이 아니라 부모님 선물이라구요.

집에 와서 풀어보니 휴대전화였습니다.

‘영상통화 전화가 부모님께 꼭 필요하실 것 같았다’는 그녀의 메모.

앞으로 수화도 열심히 배워서

저희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꼭 하고 싶다는 바램도 들어있었습니다.

이런 그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요즘도 아내는 종종 어머니 아버지께 영상통화로

사소한 일상을 수다로 풀곤 합니다.

이런 아내를 보내주신 장인 장모님께도 더욱 잘하겠습니다.

여보, 혜은아 정말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