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소풍을 가는 날입니다.
어제 저녁에 미리 장을 보고 김밥을 쌀 준비를 했죠.
역시 소풍 때 최고의 기쁨은 김밥을 먹는다는 것 아니겠어요?
새벽 같이 일어나서 햄을 볶고 당근도 채썰고 시금치도 데치고
요란을 떤 뒤 아이 입에 꼭 맞게 김밥 도시락을 쌌는데,
늦게야 부시시 눈을 뜬 아이가 하는 말,
"난 김밥이 정말 싫어. 김치볶음밥 싸줘!"
어머나 이럴 수가!
저는 학창시절, 김치볶음밥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 시절, 저의 도시락 반찬은 거의 유일하게도 '김치볶음'이었고,
소풍 날 싸는 도시락은 특별히 '김치볶음밥'이었던 겁니다.
친구들이 싸오는 김밥을 늘 부러워하며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되면 김밥은 실컷 싸줘야지 결심을 했었는데...
그 결심이 지나쳤던 걸까요?
별 일이 없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김밥을 싸서 먹곤 했는데
그게 너무 지나쳤나 봅니다.
아이에게, 저의 김치볶음밥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켰나봐요.
너무 흔해서 아무것도 아닌.. 그런 존재 말이에요.
오히려 엄마가 지겨워서 잘 안 해주는 김치볶음밥이
아이에겐 꼭 먹고 싶은 음식이 된 겁니다.
소풍 도시락으로 김치볶음밥을 싸가지고 가면
선생님이 속으로 성의없는 엄마라고 나무라진 않을까,
친구들이 얼마나 약올릴까, 혼자 속으로 별별 생각을 다하면서
아이를 김밥 쪽으로 전향시키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고집은 누구를 닮았는지 꿈쩍도 않습니다.
결국 아이가 원하는대로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보내고
프라이팬에 남은 김치볶음밥으로 늦은 아침을 먹으며
문득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풍족한 게 꼭 좋은 건 아니구나'...
그리움이나 아쉬움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고 말입니다.
조승미, 익산시 영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