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좋은 점

여름이 되니 집 사람과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오릅니다.
5년 전, 6월 말이었던 같네요.
친구의 소개로 나간 커피숍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깨끗한 피부에 단아한 모습이었던 그녀는,
단 한 가지 흠이라면 흠이랄까,
암튼 인상적인 것이 있었는데
코 옆에 커다란 점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너무 자세히 쳐다보면 기분 나빠할까봐,
일부러 그 점은 피해서 시선을 두려고 노력했지만
어쨌건 그냥 지나치기엔 꽤 선명하고 큰 점이었습니다.
점 하나가 사람 인상을 얼마나 바꾸는지는
두 분도 잘 알고 계시겠죠?
그 자리에서 처음 본 그녀는
유쾌하고 소탈한 성품을 가진 듯했습니다.
또 연락을 하겠다고 얘길하고 헤어졌는데,
돌아와서도 그녀의 얼굴 전체적인 윤곽보다
자꾸 그 점이 생각나더군요.
월말이라 사무실이 많이 바빴고
이런 저런 일들로 한 2주 후에 다시 연락을 하게 됐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온 그녀의 얼굴에선
놀랍게도 점이 사라져있었습니다.
저희 사무실에도 점을 뺀 여직원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큰 점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겨우 2주만에 그녀의 점은 깨끗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상적인 얘기들이 무르익을 무렵,
조심스레 점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점 빼는 데 아프지 않았어요?"
그러자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습니다.
"무슨 점이요?"
"그 코 옆에 점 있던 거요."
그녀는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저 원래 거기 점 없는데요."
아뿔싸! 좀더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렇게도 제 눈에서 사라지지 않던 그녀의 점은,
그날 오후 그녀가 간식으로 먹었던 수박씨였습니다.
퇴근하기 직전, 배가 고픈 사무실 직원들이
수박을 한 통 잘랐던 모양이죠.
그리곤 입주변이랑 잘 닦는다고 닦았는데
거기 어떻게 남아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워하더군요.
제가 조금만 더 자세히 봤더라면 수박씨라는 걸 알아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너무 빤히 보면 실례인 것 같아서
얼핏 보고 만 것이 사건을 크게 만들었던 거였습니다.
 
지금도 집사람과 저는 가끔 수박을 먹을 때
서로의 얼굴에 수박씨 뱉기 놀이를 합니다.
얼굴 부위별로 점수를 정해놓고 수박씨를 뱉어
붙은 만큼 점수를 더해 소원을 들어주는 거죠.
물론 최고점은 그녀의 애교점이었던 '코옆' 부분이랍니다.
오늘 저녁에도 집사람과 수박씨 뱉기 놀이를 해야겠습니다.
 
전주시 중화산동, 배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