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던 날

정다운 두 분의 음성 잘 듣고 있습니다.

이덕형님 건강 회복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김장하던 날

“아짐 김치 간 좀 봐주세요?”

앞뒷집 어르신들을 불러 우리 집으로 오시게 했다. 멀리 사는 자식들보다 더 살가운 이웃들이다. 마당에서는 고기 익는 냄새가 연기를 타고 골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나 점심 먹었어.”

대문을 들어서는 어르신이 점심 초대 한 것을 눈치 채시고 먼저 인사를 하셨다. 광주에서 출발했다는 오빠 가족을 기다린 것이 때가 살짝 지나고 있었다.

늦가을햇살이 등을 아랫목처럼 따뜻하게 덥혀줘서 마당에서 김장채비를 차렸다. 배추를 씻어서 엎어 놓고 양념까지 개놓고 나니 김장도 절반은 진행 된 셈이었다.

“벌써 김치 버무렸어?”

“간을 봐 주셔야 시작하지요.”

뒤 따라 들어오시는 어르신 역시 점심을 드셨다면서 김치 간을 보셨다. 우선 밥을 먹기 위해 한 포기를 쭉쭉 찢어서 양푼에 버무린 채 상에 올려놨다.

“좀 싱거워. 냉장고에 들어가면 더 싱거워져서 못 써”

“젊은 사람들은 싱거워야 한다고 야단들이지만 어느 정도는 간이 맞아야지.”

역시 김치냉장고 없이도 맛있는 김장 김치를 먹게 해 주셨던 어르신들은 간을 꼬집으셨다.

생김치와 숯불에 구운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약술이라며 석류 주를 꺼내오셨다.

“딸, 며느리 취하면 누가 김치 담그려고 술을 내와?”

몇 바탕 웃음꽃이 피었다지는 사이 속이 든든하게 점심을 먹었다. 배가 부르니 이제 일손이 느려진다. 하지만 작년만 해도 어머니와 둘이서 김장을 했었는데 올해는 양이 많아도 걱정이 안 되었다. 올케와 질부가 손을 보탰으니 말이다.

올 김장은 1박 2일 일정으로 느긋하게 하려고 단단히 맘먹었다. 함께 만나 하기로 한 올케와 친정어머니랑 하룻밤 정도 쌓아 볼 심산이었다. 마침 일기예보도 주말 날씨가 따듯하다고 해서 전날부터 김치 통을 씻고 고무장갑을 챙기면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친정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내가 배추 절였으니까 천천히 와라.”

“아니 절이는 것이 얼마나 어깨, 허리 아픈데 그걸 하셨어요.”

“이틀이나 품 벌일 것 있냐. 와서 버무리기만 하면 하루에 끝나잖여.”

주말에도 늘 일이 있다고 말하는 딸 시간 아껴주시겠다고 먼저 일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150포기 배추를 밭에서 뽑아서 싣고 와서 다듬고, 절이기까지 이틀을 하신 모양이었다.

그뿐인가, 농사지으신 고춧가루 챙겨놓으시고, 마늘 까놓으시고, 손수 담그신 젓갈 다려서 걸러놓으시고 몇날 며칠을 준비 해 두셨다. 당신은 겨우내 김치 한두 포기나 드실런지……

평생을 자식들 챙기느라 고생하셨는데도 먼저 손 내밀어 주시는 우리 어머니.

‘어머니 크신 사랑 배우고 또 저도 우리 아이들에게 베풀겠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빈 통을 다섯 개나 들고 삼겹살을 사서 고향집으로 갔다. 나는 어머니와 같이 배추를 씻고, 남편은 마늘을 찧었다. 마늘 찧는 일을 생전 처음 해 본 남편. 절구통과 시름 중이었다. 슬쩍 넘겨보신 어머니가 한 말씀 하셨다.

“살살 쪄야 혀.”

남편은 마늘이 자꾸 튀어 나간다면서 양파 망을 찾았다. 어머니는 창고에서 푸른 양파 망을 찾아다 주셨다. 절구를 망 속에 놓고 절구대로 찧어대니 제격이라며, 자기가 창안한 아이디어라며 큰소리를 치며 힘껏 절구질을 했다.

고춧가루 갤 죽도 벌써 쑤어놓으셨다. 양념을 개기에 좀 양이 부족할 것 같아서 죽을 더 쑤려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부엌을 입식으로 고쳐서 사라진 아궁이를 수돗가에 큰 가마솥을 걸고 만들어 놓으셨다. 제법 많은 양의 물을 붓고 쌀을 넣었는데도 젓을 것도 없이 팔팔 끓어올랐다. 이 맛에 어머니는 땔감을 챙겨 놨다 더운 물도 끓이시고 메주 쑤기, 젓갈 다리기, 고추장 담기 등 많은 양의 음식을 하신다.

한참 부산스럽게 움직였더니 그새 허리가 잘 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때마침 오빠 가족이 도착해서 준비한 양념으로 절인 배추를 쭉쭉 찢어 양념을 발라 점심을 먹었다.

이웃 어르신들의 충고로 새우젓으로 간을 더 하고 김치를 버무리기 시작했다. 등을 덥혀주던 가을햇살도 서서히 식어가는 시간 우리 김장도 끝이 났다.

손자를 대동한 오빠 가족이 먼저 떠났다. 우리는 하룻저녁 자고 가겠다고 하자 뒷마무리는 어머니가 하신다고 집에 가서 쉬라며 밀어내셨다. 대충 뒷설거지를 하고 못 이기는 척 별을 이고 고향집을 떠나왔다.

채소와 양념값이 비싸다는 올 김장철, 어머니 덕분에 편안하게 김장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