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4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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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40년

우리집 풍경도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 부엌에는 가마솥이 걸리고 불을 때서 밥을 하고 물을 데우던 시절이었습니다.

부엌에서 상을 차려 방으로 가져가는 것도 도시 새댁에게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아버님께 부엌을 신식으로 바꿀것을 말씀드렸지만

조왕신을 건드리는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제가 견디지 못해 공사를 감행했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눈치를 보고 계셨지만 좋아하시는 눈치셨습니다.

싱크대가 들어오고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들어오고

밖에 나가지 않고 밥을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은 우리집의 사건이었습니다.

도시에서 온 며느리의 반란이라 생각하신 아버님은 영

마뜩찮아 하셨습니다. 그러나 곧 여자의 일상은 편해졌습니다.

 

또 하나가 화장실이었습니다.

화장실은 대문가까이 밖에 있어 도시새댁은 밤에 남편을 깨워야 했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개짖는 소리만 들리는 새벽 화장실을 가야하는 일은 귀찮고 번거로웠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을 안으로 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아버님은 한마디로 거절하셨습니다.

화장실과 처가집은 멀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디 화장실을 집안에 들여놓느냐고 며느리를 호통치셨습니다.

그러나 공사는 시작되었고 어머님은 또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많은 시동생과 시누이들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저도 참 편해졌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40년째..아흔하나되신  아버님을 어기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어린이 날인 5월5일

어찌된 일인지 우리 시댁 종중에서는

5월5일 종중모임을 하십니다.

내 아들들도 5월5일이면 아빠와 함께

종중회의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진안향교에 나가시는 추상같은 할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올해 아흔 하나 되신

손녀 손자들이 왕 할아버지라 부르는 시아버님과

8남매 맏이인 남편..

그리고 도시에 살고 있는 장손인 큰아들네가 시골집으로 와

손녀.손자도 올해  5월5일 종중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냥 아이들 데리고

어린이날 행사에 가라고 해도

번잡하지 않고 차 밀리지 않아 좋다는

며느리 말에

내 어린 아들들 데리고 종중회의에

참석하던 마음이리라 생각됐습니다.

 

우리집 맏이의 무게가

며느리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어린이 날 종중회의를 잡으신

어른들은 무슨 생각 이셨을까?

의문 이다가도

지금껏 나도 시아버님 의중을

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중회의를 마치고 가는길에

급하게 덕진공원 동물원을 들리거나

과자하나로 어린이 날을 보냈던

내 아들들....

다행히 그렇게 어린이날을 보냈어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자랐습니다.

 

내 손녀 손자에게 어린이 날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종중회의 마치고 시골 집 마당에서 비눗방울을 불고

돌에 아크릴 물감으로 시를 쓰고

남편인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막대기에 나뭇잎 붙여 나르는 빗자루

놀이로 마당을 뛰며 어린이 날 놀이를 대신했습니다.

 

저녁엔

황토방에서

꽃차를 우렸습니다

그리고 손자.손녀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도라지꽃차로

환상의 보랏빛을 우려

꽃차 한 잔 따라 주었습니다.

거기에 손녀의 시낭송이 더해져 향긋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꽃차를 마시고

마당에서 마음껏 뛰며

어린이 날을 보내겠냐고 말하는

며느리 말에 고맙게 명치가 쩌릿했습니다.

 예전 저도 이해하지만 명치가 아팠으니까요.

 

그저 자식들 데리고 종중회의에 참석하시고

흐믓해 하시는 연로하신 아흔 하나의

시아버님의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40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 이 행사는 집안 최고 어른이신

시아버님 살아계실 때까지는

계속되어지겠지요.

 

그러다 보니 저도 이만큼 나이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신청곡:혜은이:파란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