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2(토) 송경한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송변재법인데)

지난주 2025년 7월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아주 중요한 판결이 하나 나왔습니다. 

소멸시효와 관련한 법리가 변경이 되었는데요. 핵심은 채무자가 소멸시효가 지난 빚을 일부 갚았다고 해서, 그걸 근거로 전부를 갚아야 한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인데요.

이 판결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까요, “우리말인데 해석이 안 된다”, “법원이 쓰는 말은 왜 이렇게 어렵냐”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이 주제를 조금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해보려 합니다.

 

기존에는요, 시효가 지난 채무라도 채무자가 “예전에 빌렸던 건 맞고 갚겠다”고 한다던지, 일부 돈을 갚기만 해도, 법원이 그걸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고 추정해왔어요. 

1967년부터 지금까지 58년간 유지돼 왔던 판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걸 바꿨다는 거죠?

맞습니다. 대법원은 이제부터는 단순한 말이나 일부 변제만으로는 시효 포기를 인정할 수 없고, 그 사람이 시효가 끝났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또 그 이익을 정말 포기할 의사가 있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본 겁니다.

 

‘시효이익’이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예를 들어서요.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그 사람이 10년 넘도록 갚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제는 “그 채권은 시효가 끝나서 법적으로 더 이상 청구할 수 없다”고 보는 게 소멸시효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효가 끝났을 때 채무자가 더는 갚지 않아도 되는 법적 권리, 이게 바로 ‘시효이익’입니다.

 

그럼 ‘시효이익의 포기’는 그걸 스스로 내려놓는 건가요?

송경한: 맞아요. 민법상 채무자는 시효가 완성된 뒤에는 그 이익을 스스로 포기할 수 있어요. “그래도 나는 갚겠다”는 뜻이죠. 

법률용어로는 채무승인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사로 명확하게 표현되어야 하고, 

그냥 돈을 조금 갚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시효를 포기했다’고 보면 안 된다는 게 이번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실제 사건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이 사건은 A씨가 어업에 종사하던 상인인데요. 과거 B씨에게 여러 차례 돈을 빌렸고, 그중 일부는 소멸시효가 지난 오래된 채권이었습니다. 

A씨는 나중에 일부 돈을 변제했는데, B씨는 “이거 봐라, 돈을 갚았으니 시효를 포기한 거다”라고 주장하며 전액을 청구했고, 

2심 재판부는 기존 판례에 따라 “일부 갚았으니 시효 포기한 걸로 본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건 너무 일률적인 해석이고, 채무자의 명확한 의사표시가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며 2심을 파기했습니다. 

 

그럼 이제는 단순히 갚았다고 해서 다 갚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채권자 측에서 채무자가 시효가 끝났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걸 포기할 의사도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단순히 예전에 일부 갚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한 거죠.

 

이 판례가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줄까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채권추심회사들이 시효가 끝난 채권을 1/100 가격에 사들여요. 그리고 채무자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소송을 겁니다.

채무자가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하면 소를 취하해 버리고요. 실수로 “예, 빚 맞습니다. 곧 갚겠습니다”라는 말만 해도 그걸 근거로 전액 받아내는데요. 

1/100 가격에 샀으니, 몇 명만 채무승인하게 되면 채권추심회사는 이득을 보는거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 한마디만으로는 안 되고, 정말로 그 채무자가 법적으로 시효가 끝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갚겠다고 한 것인지까지 다퉈야 하니까요. 

소멸시효 악용 사례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