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산YWCA부설 군산평화중학교 행정실장으로 있는 최영목이라고 합니다. 저희 학교를 잠깐 소개 하자면 18세 이상 성인만이 올수 있는 학교입니다. 그래서 대분 학생이 30대-60대 주부, 할아버지, 젊은 아기엄마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오늘 제2회 졸업식 때 62세 되신 차수자학생 정확히 표현하자면 할머니이자 어머니가 쓴 글입니다. 배움에 대한 그리움, 지난 세월 그리고 아름다운 학교에 관련된 추억들을 발표하여 졸업식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글을 올립니다.
답 사
입춘도 우수도 다 지나고 머지않아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날 때가 가까이 다가와 있건만, 아직도 2월의 찬바람이 가슴을 잔뜩 웅크리게 만드는 오늘.
늦깎이 학생들인 저희들을 축하해 주시러 오신 많은 분들을 모시고 정말 뜻깊은 졸업식을 맞이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바쁘신 가운데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음은 항상 배움에 있었건만, 어렵고 힘든 세월을 견디느라 그렇게 갈망하던 배움의 길을 멀리서 눈물로만 바라보아야 했던 우리들.
그러나 그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야했던 세월들을 뒤로하고 여러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주위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오늘 이렇게 자랑스런 중학교 졸업장을 가슴에 안게 되니 그 감회를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선생님!
성인들을 위한 학교가 있으니 와서 공부하라는 여러 광고들을 보고서 ‘정말 나도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말인가?’ 하고 몇 번씩이나 보고 또 보고도 선뜻 공부하러 가겠노라고 나서기 어려웠던 그 때.
가정의 여러 형편과 주위의 시선, 그리고 이 늦은 나이에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으로 차마 원서를 내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하기를 여러 날.
그런 갈등의 나날 속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신 선생님들의 아낌없는 격려로 어렵사리 입학한 학교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땐 늦게야 공부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 부끄럽고 창피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입학을 하고서도 행여 아는 사람들이 보지나 않을까, 이 늙은 나이에 공부한다고 흉이나 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늘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하였지요.
때를 잘 못 만나 이제야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결코 부끄러워 해야할 일이 아닌데도 그것을 왜 그렇게 부끄럽게 여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보람 있는 시간으로 바꾸어 돌려주신 여러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 때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또 딸이라는 이유로 배우고 싶어도 학교에 보내주지 않으셨던 부모님을 원망했던 때가 있었지요. 그러나 늦게나마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수 없었던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며 열심히 공부해서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 졸업장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정말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였지요.
그러나 나이 60이 넘어 이제야 배움의 한을 푸는가 싶었는데 여기저기 쫒기듯 이사를 다니면서 이러다 학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과연 공부를 마치고 졸업은 할 수 있을 것인지 불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마음놓고 공부할 교실 한 칸이 없어 이리 저리 떠돌며 몇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의 학교에 정착하기까지는 한없이 불안했던 시간들이었지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자랑스런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올해 새로 태어날 고등학교에도 버젓이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꿈만 같습니다.
온통 외국어 투성이인 길거리의 간판 한 자, 신문 한 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며 장님 아닌 장님으로 살아왔던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은 심봉사가 눈을 뜬 듯 온 세상을 이 두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기쁨을 그 어떤 말로 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감았던 눈을 뜨게 해 주시고 힘든 시간 이겨내고 끝까지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스런 후배들이여!
선배로서, 같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나누었던 동료로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짧은 시간 짬짬이 학업의 연장이라는 이름으로 다녔던 안면도며 수덕사, 수안보 온천에서의 하룻밤, 그리고 장항의 아름다운 백사장에서의 추억. 고적답사라는 이름으로 가 본 경주 불국사와 속리산에서의 즐거웠던 시간들이 이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기에 즐거웠던 만큼 더 많은 추억을 만들 기회가 없다는 아쉬움도 크게 남습니다
비록 남의 학교 체육관이었을망정 함께 웃고 함께 떠들며 나이를 잊고 뛰놀았던 체육대회 때는 정말 즐거웠던 한 때로 기억될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찌개를 끓인다고 꾸중을 들어가면서도 맛있게 나누어 먹었던 점심밥, 제사라고, 누구 생신이라고 싸 들고 와서 한 조각씩 나누어 먹던 전이며 떡들이 더 맛있었던 것은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었던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한 교정에서 선후배로서 나누었던 우정과 사랑은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것입니다.
학교를 떠나면서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건 어떠한 경우에도 배움을 중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함게 입학했던 급우들이 중도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을때 그 허전함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잡은 배움의 기회인데 저렇게 그만둘 수밖에 없을까 생각하면 한없이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렵고 힘든 고비가 있을지라도 처음 가졌던 마음을 다잡아 끝까지 배움을 중지하지 말고 노력하면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중지하지 말고 노력하면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후배들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이별은 슬픔의 눈물을 낳습니다.
그러나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것이기에 오늘은 아쉬움의 눈물을 거두렵니다.
우리 서로가 훗날 다시 만날 때 당당하고 떳떳한 선배로 설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들이 못 다 이룬 뜻을 후배들이 이어 모교의 전통과 명예를 빛내주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후배님, 그리고 도와주신 여러 가족 친지 여러분!
저희 졸업생 일동이 이 영광된 자리에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돌보아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여러분들의 사랑과 격려를 안고 더 나은 내일을 열어가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모교의 영원한 발전과 선생님들과 후배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004년 2월 24일
졸업생 대표 차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