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하다 뼈 부러진 이야기

요사히 김차동씨의 달리기 사랑에 조금은 걱정이 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유전적인 영향을 받아서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잘 하는 아이였지요. 운동회때는 청.백 계주에 꼭 뽑혔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육상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계속 선수 생활을 했으며 때로는 좋은 성적으로 학교 이름을 빛내기도 했지요. 저는 중.장거리 선수로 보통 3천미터와 10킬로미터를 달렸습니다. 그러는 저를 육상 협회에서도 기역을 해 두었던지 결혼한지 10년이 되었을 무렵 시청 생활체육협회에서 어느날 전화가 왔더군요 도민체전에 출전해서 한번만 뛰어달라는 내용이였습니다. 저나 남편은 거절을 했습니다. 운동을 그만둔지도 오래되었고 아이를 셋 이나 낳아서 이제는 예전처럼 잘 달리지 못한다고 거절 했지만 자꾸 걸려오는 전화에 저는 그럼 한 번만 뛰어보겠다고 약속을 하고 익산 공설운동장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벌써 익산을 대표하는 선수들과 육상협회 간부들이 나와 있었고 저는 늦게 도착한 이유로 몸을 풀 시간도 없이 출발선에 섰습니다. " 탕 ' 소리와 함께 40미터정도 뛰었을때 저는 다리가 꼬이면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너무 다리가 아파서 일어날 수 가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리에 쥐가 나서 그런줄 알고 일어나라고만 하더군요.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지 못하자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저는 119 에 실려 원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게 되었답니다. C T 촬영결과 대퇴골 탈골및 골절 . 쇄골 세토막으로 골절. 이런 상황에서 저는 6 시간의 수술을 했고 무릎에 구멍을 꿇어 다리를 매달아 놓아야 했기때문에 대.소변을 모두 받아내는 대형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수술전 최악의 경우 다리를 절단해야 된다고 남편에게 동의서를 보여주었고 남편은 그때 한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저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아이들 둘은 외삼촌댁에서 지내고 딸아이는 어머니께서 돌보아주셨습니다 3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해서 남편의 지극한 간호 덕분에 저는 점점 회복되어갔고 1년가량 물리치료를 받으러 매일 병원에 다녀야했습니다. 이런 일을 격으면서 남편에 대한 사랑도 더 깊어갔고 남편역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시에서는 아무런 보상도 해 주지 않았고 저는 시를 위해 뛰다가 다쳐서 고생만 무지무지하게 한셈이 되었지요. 이런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어느 누가 시를 위해서 뛸지 조금은 걱정이되고 시에서 치료비정도를 해줘야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흉터자리만 남았고 괴사가 일어날지 몰라서 통증이 있을때마다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곤 한답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만 걸으면 통증이 오기때문에 뛰는건 생각도 못합니다. 다리만 안 다쳤으면 지금쯤 저도 여러 달리기 대회에 참가 하여 김차동씨와 겨루어 볼 수 이었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하지만 언젠가 한번쯤은 시합해 보자구요. 항상 조심하시고 시합전에는 꼭 준비운동하세요. 남편에게 항상 고맙구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노래한곡 신청합니다. 제목 : 자 옥 아 016ㅡ658ㅡ0846 익산시 모현동 현대3차303동1506호 최 미 경 방송이 된다면 미리 연락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