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성시대 애청자입니다.
저에겐 봄이 되면 따사로운 햇살만큼이나 가슴 찡한 그리운 이모가 한 분 계셔서 이렇게 사연을 올립니다.
어릴 적 외가는 산골이었고 집 옆으로는 도랑이 흐르는 물 맑고 경치좋은 곳이었죠.
나이 드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상할머니,늘 가난이 강둑을 따라 흘렀고 개나리처럼 야위어 갸냘프기까지 했던 이모는 일밖에 모르셨답니다.
그 시절 동생과 연년생이던 저는 세 살때부터 외가로 보내졌고 결혼도 안한 이모는 저를 자식처럼 키워 주셨지요.
이모와함께 길을 걸으면 어린 저는 잡풀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고 무릎에 상처가 나서 울먹거리면 머리에 큰 고무대야를 이고 계셔서 힘이 드실텐데도 제 한 손을 꼭 쥐시고 놓지 안으셨지요. 그땐 그걸 몰랐지요. 이모가 힘들다는 걸.한 시도 이모가 없이는 살 수가 없었고 그 시절 저에겐 절대적 존재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이모가 떠나셨지요.
나중에 알았지만 너무 가난한 살림때문에 외할아버지가 산 밑 어디엔가 있는 부대에 가셔서 술을 한잔 얻어 드시고는 맘에 드는 군인에게 이모를 팔았다는거에요.
물론 딸자식도 자식이니 어련히 알아보시고 또 남자대 남자로 맘에 드셨으니까 그렇게까지 하셨겠지만 갑자기 나타난 군인을 따라 이모는 상행선을 타야 했지요.
너무나 곱고 순하던 이모, 토종개처럼 일만 하시던 이모는 그렇게 남들 써보는 면사포도 한번 못써보고 시집을 가야 했지요. 결혼이 뭔지도 모르던 저는 그저 그 군인아저씨가 밉기만 했지요.
그리고 이모는 제가 가족에게 돌아가는 일곱살이 될때가지 내려오지 못하셨지요. 왠일인지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이모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고 동네에 큰잔치가 있는 날도, 제삿날에도 오지 않으셨지요.
그리고 어느날 죽는다는 게 뭔지도 잘 모를 나이에 이모의 죽음을 알았지요.
죽는다는 게 뭔지 잘 몰랐지만 이별의 슬픔이 파도처럼 산불처럼 번져나가는 기분이라는 건 알았지요. 개나리 울타리 따사로운 봄볕에서 처음으로 저는 흐느끼며 울어 보았습니다. 그냥 마구 울었습니다. 이모는 저에게 전부였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그렇게 오열했던 개나리 울타리는 봄마다 저의 놀이터이자 화단이 되었고 개나리밑에서 창조주처럼 개미굴도 파며 놀았지요. 샛노란 개나리꽃은 오랜지색 환타병에 담가 책상에 놓아두곤 했었구요.
이모는 군인 아저씨를 따라 서울로 가신 후 아파서 돌아가셨다 합니다.
개나리 활짝 핀 봄에 돌아가셨다 합니다.
저는 이모가 개나리가 되신 것 같아요.
노오란 개나리만 보면 이모가 생각나는 게 분명 개나리가 되신것만 같아요.
사랑하는 이모.
수많은 계절이 세월을 따라 갔어도 봄이 이렇게 다시 온 걸 보면 이모도 다른 이름으로 우리곁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요. 이모는 지금도 저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모만 생각하면 편안해 지거든요.
돌아가신 교황이 그랬어요.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평화를 가지고 온다구요.분명히 이모는 개나리같은 사랑이 되신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