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foot)과의 대화

오늘 따라 더욱 종아리와 발바닥으로 피로함이 밀려온다. 반신욕을 할까 하다 귀찮고 피곤해서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반쯤 담아 거실 바닥에 놓고 쇼파에 엉덩이를 의지한체 텔레비젼 리모콘을 켠다. 대야속에 피곤에 지친 두 발을 살며시 담구었다. 순간 시원했다. 온기가 발끝서 머리끝까지 쭉 타고 오는 느낌이 천국이 따로 없는것 같다. 대야에 담긴 물속으로 어렴프시 발이 보인다. 퉁퉁 부어 있다. 발가락을 살랑 살랑 저어 보니 굳은 살이 이곳 저곳 보인다. 대야속 적은 물이 작은 파동을 일으키며 엄지 발가락이 슬쩍 고개를 내밀면서 나를 보고 웃는다. 너 지금 나 보고 비웃니? 그래도 웃는다. 이놈이 틀림없이 나를 보고 비웃는것 같다. " 이제야 보이니. 너는 발 냄새도 안나? 얼마만에 목욕시켜 주는거야. " 그래 맞다. 좀 됐다. 게을러서 그랬고 바빠서도 그랬다. " 너는 날 얼마나 혹사 시키는줄 잘 알거야. 아니 아는 놈 이라면 이렇게까지 무관심 하진 않았겠지. 한번 잘 생각해봐. 검정 고무신은 생각 조차 하기 싫다. 어렸을적 뒤굼치 때에 발등이 고무신 테두리로 인쇄하듯 검게 변할때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고 여름방학때면 늘 한벽당으로 팽팽바우로 더 먼 각시바우까지 수영하러 간답시고 그 뜨거운 아스팔트길과 자갈길을 걸어 갈땐 정말 말도 못했었다. 물적신 발로 되돌아 올때면 삑삑 소리를 내며 꽈리 부는 소리가 날땐 창피하기도 했어. 초등학교 고학년땐 대한민국 통일 검정 운동화에 늘 바늘 꿰맨 상처에 냄새 또한 심했었지. 겨울엔 몹시 춥기도 했었고. 그래도 니가 곧잘 볼을 차서 그땐 신기 힘든 축구화도 신어 봤고 늘 코치님 잔소리에 자주 씻겨 줘서 니가 축구부원 이였을땐 참 행복하기도 했었다." 나도 행복했어. 내 재능을 발견했으니깐. " 중학교 들어 서면서 교복 자율화로 운동화 패션도 매우 다양해진것 알지. " 그래. 부잣집 아이들은 유명 메이커 운동화를 신고 다녔지.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삿지. 대부분은 검정 운동화였으니깐. 그래도 나는 부산 사는 누나가 보내준 보세 운동화 나이켁이라고 쓰려진 짜가 운동화 신겨 줬잖아. " 짜가 지만 정말 푹신하고 향기도 좋더라. 너 아니? " 뭘 " 그때 내 입장 난처 했던것. 검정 운동화가 가면 그래도 우쭐 거렸는데 유명 메이커가 지나 갈땐 얼마나 켁켁 거리며 눈칠 보았는지. 그래도 다행이지. 나 같은 처지의 애들도 종종 있었잖아. 짜가 월드컵, 스펙스 , 나이스, 그리고 꼬부랑 글씨의 외래어 상표 등등." 너는 별걸 다 기억하고 있구나. " 너는 내가 가장 걱정 스러워 했을 때가 언제 인지 아니? " 글세. 늘 걱정스러웠겠지. " 고등하교 2학년 봄엔가 아버지 돌아 가셨을때 넌 한참 사춘기였잖아. 참 힘들었을텐데 옆에서 보기에도 넌 그 시절을 잘 이겨낸것 같아. 그런 네가 대견하기도 했었어. " 고마워. 그건 아마 무조건 엄마 생각 하면서 이겨냈던 걸로 기억 난다. " 한 땐 니 발 냄새가 그리울때도 있었지. " 그게 언젠데. " 너 군복무 마치고 한참 공부 한답시고 시골 전세방에 쳐박혀 두문불출할 때 말이야. " 그 얘긴 하지 말자. 소중한 시간도 많이 잃어 버렸고 아직도 전세값 3백만원은 받지도 못했으니깐. 나 보다 더 어려운 집이였던 모양이야. " 너 서른 두살땐가 정신 차리고 닭집에서 배달원 한다고 할 때 나는 솔직이 감동 했어. 그때 그 감동이 내가 이렇게 힘들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 왜 그런데. " 첫 출근해 운전 하면서 여성시대 처음으로 듣던 날. 사연중에 집장만 했다며 기뻐하는 방송 듣고 마음 속으로 약속 했잖아 너도 꼭 그렇게 한다고. " 그래 그때 그 분이 정말 부러워서 나도 꼭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었지. " 그후 니 자린고비에 정말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 특히 그놈의 군화 때문에. " 그게 어째서. " 너는 니 꿈을 위해 5년간이나 절약 한다며 예비군 훈련 끝난 뒤 쓸모 없는 군화 발목 잘라 사계절 신으며 니 부를 축적 할때 나는 괴로워 죽는 줄 알았어. 너 일 할때 군화끈 동여 메면 바람 한 점 들어 오지 않고, 가죽이라 땀이 조금만 차도 니 역겨운 냄새에 무엔가 더해져 나는 냄새는 말조차 표현 할수가 없었어. 나를 보호한다고 신는 양말은 그 억샌 가죽에 눌려 금새 구멍이 나 이리 저리 치여서 지금의 그 괭이 살이 생긴겨야. 못생겨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밀 정도지. 겨울엔 완전 냉동고나 다름없지. 그런데도 괜찮은것 보면 너도 어지간이 무던한 놈임에 틀림없을 거야. 딱 하나 좋은건 비올때 방수 하나는 잘 되더라. 이젠 제발 그 군화의 굴레에서 나를 놓아 주지 않을래. 이젠 니 집도 있잖아 작년 5월, 너 분양 계약서에 도장 꽝 찍을때 얼마나 기뻐 했니. 나도 그랬어. 그놈의 군화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지. 군산 해양 결찰대에서 근무하다 방송 들었다며 제대한 군인이 새 전투화 집으로 보내 왔었잖아. 너는 좋았겠지만 난.... . 큰형님의 갑작스런 주검이 너도 무척 슬펐겠지만 나도 몹시 슬펐단다. " 왜 " 느그집 형편상 어머니와 대학생인 조카 둘을 졸업시키려면 니 뻔한 봉급에 결국 희생양은 나일테니까. 그래도 조금은 희망이 보인다. " 뭣때문에 그런데 " 네가 알뜰 살뜰 집장만 했던것 처럼 조카들도 잘 졸업 시키리라는 걸." 어떻게 알았데. 진짜 더 열심히 살려고 마음 먹었섰는데. " 너 소방서에 다니는 작은집 형님께 군화 얻어 올때 이미 알아 봤지. 참 대견하다. " 아냐. 왜 나라고 내 자유로운 생활과 가정과 여유로움을 갖고 싶지 않겠어.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사먹고 말이야.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한지도 벌써 대 여섯달이나 지나 갔네. 하지만 큰형님 돌아가셨을때 생전 처음 보는 계원들도 조카들 학비 하라며 장학금 살짝 놓고 간적 있잖아. 그때 그 장학금이 나를 영원한 가족의 끈으로 꽁꽁 묶어 놓은것 같아. 그런 형님 계원들이신 우신회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너에겐 정말 미안해. 제대로된 구두의 맛도 운동화의 맛도 못보여 줘서. " 괜찮아. 니 맘 다 이해 하니까. " 정말 고맙워. 이해해 줘서. " 몇일 전 큰형님 부채 갚으러 농협에 갔을때 무척 기운 없어 보이던데." 아냐. 그냥 예전 생각이 나서. 원망도 스럽고. 이 얘긴 하지 말자. 그저 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조카들 앞에 걸림돌을 치워 주고 싶은 마음에. 나중에라도 이 삼촌 맘을 이해해 줄까. " 술 한잔 할 줄 알았더니. " 그것 마저도 나에겐 지금 사치잖아. " 꼬박 1년치 봉급 다 챙겨 주고 조카들 2학기 학비 걱정 될텐데. 나도 마음 단단히 먹었다. 앞으로 튼 살 좀 생긴다고 원망하지 않을께. 꼬랑내 나도 꽃향기로 알고 맡을께. 겨울에도 춥다고 짜증내지 않을께. 6년전 처음 여성시대 듣고 니 계획대로 해온 것 처럼 너를 믿으니까. 그리고 제발 여성시대 음악 나올때 운전하다가 발좀 구르지마. 정신도 없고 사고날까 두려우니까. " 별 걱정 다하네. 아뭏든 고맙다. 이렇게 이해해 주니. " 그리고 이젠 나까지도 사랑해 줄수 있는 반쪽을 빨리 찾길 바랄께. 물론 앞으로 2년간은 힘들겠지만. 참 윤승희, 박일두님께 너 힘들 때 잘 듣는 노래 있잖아. 동행. 꼭 들려주시라고 부탁해봐. " 너무나 무관심 했다. 물속에서 내 반평생 인생을 말해주는 뚱뚱 불어튼 발가락들의 속삭임이 어찌보면 내 가슴속, 뇌리 저편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영상을 대야속 물 표면위에 엄지 발가락의 웃음을 통해 진한 눈물과 웃음으로 나를 다시 한번 살포시 깨웠다. 그래 조금만 참아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송천 주공 아파트 120동 1501호 유강철 011-651-5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