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깊어지는 건 추억뿐인가보다.
아이셋을 낳았고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도 문득 바람이 가져다 주는 풀냄새나 봉덕각시처럼 툭툭 터지게 잘 쪄진 감자같은 걸 먹을 때는 시간이 가져다 주는 향수에 젖어든다.
외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나는 집 옆으로 도랑이 흐르고 가을이면 감이 주렁주렁 작은 태양처럼 메달린 감나무가 있는 고산 외갓집을 늘 그리워하며 향수에 젖곤 한다. 특히나 휴가철이 되면 더욱 그렇다. 어릴 때 방학만 하면 동생들과 김제에서 고산까지 버스를 네번이나 갈아타고 오곤 했으니까 말이다. 등이 타다 못해 벗겨지도록 물놀이를 하고 저녁이면 보리밥에 된장과 열무를 넣은 비빔밥을 양푼 하나가득 비벼가지고 동생들이며 사촌들이랑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곤 했었다.
그런 외갓집이 다들 도시로 살림을 살러 나가고 일터 찾아 나가고 하는탓에 빈 집이 되어버렸다. 식구들이 각기 열쇠를 가지고서는 번갈아 가며 아니면 시간 되는대로 이모랑 외삼촌들이 청소를 하러 오기로 하고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가족들만의 별장이 되었다. 외조카로서는 단 하나밖에 안주는 선택을 받은 나는 일년에 한번정도 피서철에 열쇠들고 나의 과거가 있는 시간안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한다. 그냥 시골의 여느 마을 다름 없는 집 한 채지만 이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었다. 그리고 마음껏 그 시절을 누리곤 했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그 재미를 알턱이 없겠지만 아이들도 나의 외갓집을 많이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해인가 외가 옆집에 순이씨라는 조금은 모자라는 언니가 이사를 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같이 살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시집도 한 번 갔었다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우리가 머무는 며칠은 그이도 자주 눈에 띄였고 젤 먼저 말문을 트는 건 역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어른인데도 짖꿎게 놀려대고 하면 괜시리 내가 더 미안해져서 옥수수도 나눠 먹고 삼겹살 구울땐 같이 와서 먹자고 해서 밥도 먹곤 하였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니 우린 외갓집도 가고 순이 이모도 보러가게 되었다.
사실 난 발음도 별로 부정확하고 하는 짓도 그리 마땅찮은 순이이모를 아이들이 따르는 게 썩 내키거나 하진 않았다. 거기다 어찌나 더러운지 씻는 걸 싫어하고 위생관념이 전혀 없어서 그 더러운 손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뭐라도 집어 줄까봐 조마조마 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마음이 비단결이였고 언니의 순박한 웃음은 떠 올리기만 하면 마음 한 언저리가 애틋해지는 그런 언니였다.
두 해전 쯤인가 우리는 어김없이 피서를 외갓집으로 갔다. 언니도 무척이나 반가워 했고 그간에 복분자를 따러 다녔다고 얼굴도 많이 그을려 있었다. 원래 까만 피부라서 그 때깔이 그 때깔이었지만 눈이 더 쾡하고 누렁이가 더 하얗게 보이는 걸 보면 분명히 자연썬탠이 된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떡을 해주겠다고 어찌나 방방 떠서 분주히 오가는지 우리는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하며 식구들끼리 키득거렸다. 여지껏 정체 불명의 요리로 순이식 식사를 해 오던 그녀가 떡이 왠말이단 말인가! 어쨌든 우린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녀의 `순이표 송편`을.
저녁이 되자 그녀는 학표 은쟁반에 정말로 송편을 만들어 왔다. 한쪽는 쑥을 넣었고 다른 한쪽은 그냥 흰 송편이었다. 그저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감동이 물밀듯 밀려와서 하마터면 울뻔했다. 몸도 부자연 스럽고 말도 잘 못하는 그녀의 송편이라.
우린 고맙다는 말을 열번도 더 했다. 그리고 피서내내 먹으려고 준비한 음식들 중의 일부가 순이언니네 냉장고로 향했다. 그땐 그래야만 했다.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말이다.
그리고 우린 식기전에 먹어야 한다고 성화를 대며 우리가 준 음식과 과일을 들고 대문을 나서는 언니의 성의에 못이겨 각자 입에 한개씩 송편을 물고 있었다. 그러나.......오! 신이시여
왜 하필 그 순간 순이언니 손톱의 때를 기억하게 하셨나이까!
난 아이들 입속에서 한참 벌어지고 있는 잔치를 끝내줘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땐 식도로 넘어가지 않은 모든 송편을 다 뱉어내게 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얼른 뱉어야 한다고 소리를 꽥 지른 엄마의 비명에 일단 뱉어 놓고 왜 그러냐고 묻기 시작했다. 내가 순이이모 `손톱의 때` 이야기를 하자 인정 많은 둘째아니만 빼고 다들 송편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사실 손톱의 때만 생각난 게 아니고 그 집 부엌은 귀곡키친이다. 거미줄에 전기불은 어두워가지고 조리도구라고는 손에 잡히는대로 쓰고 무슨 연장 던지듯이 던지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을 우리가 하루잇해 보아온 건 아니니 말이다.
그때 마침 동네개가 문밖에 서성이는 게 눈에 띄였다. 우리 식구들은 누구랄것도 없이 정신없이 개를 불렀다. 평소에 털빠진다고 개고 고양이고 별로 안좋아 하는 우리 남편까지 단체로 우리는 호강아지 행위를 했다.
그 다음날 우리 가족들은 동네 영감님이 간밤에 무얼 잘못 주어먹고 설사가 났다며 읍내에 강아지 약사러 가시는 뒷모습을 꿀먹은 벙어리들처럼 물끄러미 바라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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