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로 접어 들면서 날이 꽤 쌀쌀해지고 가로수 밑둥을 보면 낙엽이 수북합니다.
제게는 5학년과 4학년 두명의 딸아이가 있습니다.
전교생이 45명인 시골 학교를 학교버스를 타고 등교했다가 수업을 마치고 방과후 교실까지 하고나서 5시쯤 학교버스를 타고 다시 마을 앞으로 오는 생활을 5년동안 하다가.
한달전 남원 시내로 이사를 하였고 지난주에 시골 학교 학습발표회가 끝나고 시내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첫 등교를 하면서 "집에서 학교까지는 이길 따라서 신호등을 두번 건너서 가야 되니까 차조심 하면서 잘 다녀야 된다"고 말 해 주었습니다.
그날 오후 아이들이 집에까지 잘 찾아 왔길래,
"길 잃어 버리지 않고 잘 다닐수 있겠어?" 했더니.
"에이, 아빠는 참. 우리가 아직도 유치원생인줄 아세요? 걱정 하지 마세요"라고 하면서 집까지의 길은 잘 익혔는지 찾아 올수 있다고 말합니다.
두번째 등교일인 월요일에는 저번 초등학교에서 가져온 교과서 열 여섯권을 학교에 다시 가져가 개인 사물함에 두고 다녀야 한다기에 승용차로 태워다 주고 일터로 향했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있던 오후 4시30분쯤.
둘째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울먹이면서 하는말
" 아빠! 언니를 잃어버렸어요"
"은진아! 다시 한번 천천히 설명해봐 언니가 어떻게 되었다구?"
"학원 끝나고 집으로 왔더니 언니가 집에 없어. 학교 끝나고 문방구에 들렀다가 집으로 간다고 했었는데 아직 안왔어. 그리고 좀전에 전화 왔었는데 터미널 근처에 있다는데,터미널이 어디야?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합니다.
잠시후 전화벨이 또 울렸습니다.
"1541 콜렉트 콜입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확인하려면 아무 버튼이나 눌러주세요" 합니다.
"여보세요"
" 아빠! 나 다정인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다정아! 두려워 하지 말고 거기에서 보이는 간판 이름을 말해봐"
"응. 별미 콩나물이라고 써 있는데
" 알았다. 어디가지 말고 아빠 갈때까지 거기에 있어야 해"
사실 저도 별미 콩나물을 어디에선가 본것 같은데 정확히는 어딘지 잘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일을 마무리 하고 집사람에게 "별미 콩나물이 어디있는지 알아?" 라고 물으니
"있잖아, 시청옆에 무슨 교회 앞에 있는 국밥집 말인것 같은데, 왜 지난번 자기랑 얘들이랑 같이 가서 밥 먹었던 곳 이잖아" 합니다.
아하 이제 알았다. 제가 일하는 곳과 시내와는 거리가 있어서 승용차로도 15분 거리는 되는데,전화벨이 울렸다가 받아보면 끊어진 상태가 되는 답답한 전화가 5번 정도는 왔을 겁니다. 발신 번호는 일정한 것을 보니 다정이가 긴급통화를 누르고 내가 받으려면 몇초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연결이 쉽게 되지 않으니까 수화기를 자꾸 올려놓은것 같습니다.
은행사거리에 있다는 둘째딸 은진이를 태우고 시청옆으로 가니길 건너 전화박스옆에 다정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은진이가 먼저 발견하고는 "언니다. 아빠 언니 저기 있어요"
"이젠 됐다. 찾았으니까 천천히 횡단 보도로 건너가서 데리고 와라"
한참후 은진이가 다정이 언니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 이쪽으로 오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다정아! 길 잃어버린것은 그럴수도 있겠지만, 전화할 생각은 어떻게 했어?"
"학교에서 배웠잖아. 돈이 없을땐 긴급통화 누르고 전화 하면 된다고"
"근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한 3km는 되겠는데, 다리 안아파?
"아파도 참고 걸었지 뭐. 근데 아는길이 안 나오는 거야"
자꾸만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중.소 도시인지라. 시내가 그렇게 복잡하진 않지만, 한번도 다녀보지 않은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한적한 시골길과 달리 매우 복잡하게 느껴질 만도 하지요.
한적한 시골에서 살다가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도시로 둥지를 옮긴후 첫번째 벌어진 소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