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

며칠전이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작물온도 조절해주고 늦은점심을 먹기위해 집에와보니 몹시 야윈
낯선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내손을 덥석잡으며

"아따 이게 몇년만이여. 중학교다니다 부모님따라 서울로 이사간지가 30년도 훌쩍
지났구먼."아 이러면서 반가워 하며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모습을 보이기에
전 당황하며

"어메. 어르신은 뉘신디. 전 초면인것 같은디랍."하며 말끝을 흐리니
나 이웃에 살던 친구 경식이 인디 죽기전에 내가 태어나 뛰놀던 고향이며 용기 자네가
보고잡허서 왔잖여."하며 거친숨을 몰아쉬면서 친구는 고향을떠나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이제 먹고 살만하니까 폐암말기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며 나에게

"어이 용기. 나랑 까치산쪼께 안갈랑가?"하기에 어릴때 이 친구랑 맹갈잎으로
열기설기 엮어 모자를 만들어 머리에 쓰고 나무를 깎아 총을 만들어 온 산을 뛰어다니며
전쟁놀이 하느라 해가는줄 모르며 놀던 추억이 떠올라 까치산에 가고 싶어하는것 같아
싫다는 친구를 강제로 등에업고 까치산을 오르는데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이제 우리도
중년이 되어가는구나 가는세월이 왜이렇게 야속하고 허망한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친구를 업고 가는데 나도모르게 눈물이 콧등을 흘러 내립디다.

우리는 까치산 잔디밭에 두팔을 벌리고 누워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친구가

"어이 용기. 아마 국민학교 6학년때 였지. 우리 아버지가 육성회비 내라고 준 돈가지고
학교도 안가고 자네랑 한시간넘게 걸어 부안읍내에 가서 말로만듣던 맛난 짜장도 사먹고
아이스깨끼도 사먹고 집에와 부모님한테 들통나 종아리에 피가나도록 맞은 기억도 생각나고
국민학교 졸업하고 우리 중학교에 갈수 있었지만 친구 순님이는 우리들보다 공부도 잘허고
그림도 잘그리는디 가난혀서 중학교도 못가고부산서 고무신 공장에 댕기는 저그 언니따라
고향 떠나면서 너그들은 참 좋것다. 나는 가난혀서 중학교도 못가고 언니따라
공장에 가는디 잘있으라며 검은 고무신신고 고향을 떠난지가 엊그제 같다며 어릴때 추억을
들려주는 친구 손을 잡으며 전 그려, 그려만 했습니다.

우리집에서 하루저녘 묵으며 못다한 이야기 밤새 나누자고 했지만 친구는 그럴수 없는
자기자신이 서럽다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 자가용에 올라타고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온 친구아들이 나에게 그럽디다.

"주기전에 고향을 지키며 사는 친구한번 보고 친구들과 놀던 까치산에 가보는게 소원이라고 했는데
그 소원 이루어 줄수있게 도와주어 고맙다며 갑자기 건강하시라며 나에게 큰절을 올리는데
왜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저멀리 멀어져가는 친구차를 바라보며 그동안 욕심만 부리며 앞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이제 뒤도 돌아보며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힘들게 사는 우리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추신
함께 뛰놀던 어릴때 친구들 다들 고향을 떠나 살고있는데 그 친구들 그리며 허풍수/죽마고우
                                                                                                     나훈아/흰구름 가는길
                                                                                                     김동아/미움인지 그리움인지
                                                                                                     신   웅/들녘길에서
두곡중에 한곡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방송할 분 사연이 올라오면 그분들 우선적으로 방송해주시고 방송할 사연이 부족할때
제 사연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주 여성시대가 있어 행복한 애청자 김용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