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좀...

저희 남편 이야기 하려구요
저희 남편은요 총각때 냈던 삐삐 영수증을 아직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뭘 잘 못버린답니다
특히 종이와 관련 된 것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데요
영수증, 편지, 서류 등등 종이에 쓰여진 것들은 절대 버리지 않아요
한번 자신이 쓴 문서나 자신이 낸 돈에 대한 영수증은 그 기간의 멀고 가까움과는 상관 없이 절대 버리지 않아요
저희 집 장농위에는요
대략 20개의 작은 상자들이 있는데요
그것들이 모두 저희 남편이 버리지 않고 모아놓은 영수증이며 문서들이랍니다
꼼꼼하다는 평을 받아 좋을때도 있지만 웃지 못할 일도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장농 깊숙한 곳에 생전 처음 보는 상자 하나가 있는거예요
뭐 저것도 한 10년은 된 영수증 모아둔 것이겠지 하고 지나치려는데
아무래도 여자의 직감이 좋지 않더라구요
그래 그 상자를 열어보니
세상에....
우리 남편이 첫사랑과 주고 받았던 러브레터더라구요
'J! 오늘 저만치에서 멀어지는 당신의 뒷모습이 붉은 노을처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마도 남편의 첫사랑은 J라는 이니셜을 쓰는 여인네 였다 봅니다
"J는 무슨 J! 그럼 나는 H냐?"
은근히 속이 부글거리며 상자를 닫으려는 거참 생각 할 수록 속은 상하지만 재미는 있더라구요
애라 모르겠다 하며 상자를 쏟아놓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편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어찌나 남의 사랑 편지가 아니지요 우리 남편 러브레터가 재미나던지요
저녁 때 돌아온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오늘 통장으로 공과금 낸 거 확인서 받아왔어?" 하고 묻기에
"J! 스치는 바람에~~" 하며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이사람이 갑자기 노래는....공과금 낸거 어디 보자고 2009년이라고 쓴 영수증 상자에 넣어놓는거 알지?" 하기에
"상자! 어 맞어 상자! 상자 상자 영수증 상자 말고 다른 상자!" 했지요
"뭐라는 거여? 참내, 다른 상자 말고 꼭 2009년 이라고 쓴 상자에다 넣어 놓으라니까"
누가 누구보고 화를 내는 것인지요
"여보~~ 나한테는 왜 H! 하면서 편지 않썼수? 나는 뭐 영수증만 챙기는 사람이여?"
하면서 문제의 상자를 보여 주었습니다
당황한 우리 남편,
아무리 뭘 잘 버릴 줄을 몰라도 유분수지
아니 첫사랑이랑 주고 받았던 편지는 좀 버려야되지 않겠어요^^
그날 우리 남편 10년도 더 넘은 영수증 상자들을 안방에 진열해 놓고 어디
다른 편지 않 숨었나 찾느라 아주 고생했답니다
그러게 버릴 건 좀 버려주야는디요^^
 
그런의미에서 오늘 우리 남편한테  이선희의 J에게 한번 들려주세요^^
 
<익산시 신동 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