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사랑

 

휠체어 감격의 눈물


안녕 하세요? 저는 대전에 살다가  바람, 돌, 여자가 많다고 불리던 삼다도로  부모님을 따라 70년도에 이사갔어요.

대전에서는 쌀 밥만 먹고살다 이사가보니 제주는 부잣집도 부드러운 차조를 섞은 꽁보리밥을 먹는 시대였어요.


제주 아가씨는 시집 갈때까지 쌀 3말 을 못 먹고 갔다 하더라구요.

인구에 비례해 땅이 좁고 모든 생활 물품이 육지에서 들여오니까 너무 비싸서

그러니 저희도 애매한 꽁보리밥 많이 먹었어요.

 지금 저는 보리밥집 가도 질려서 쌀밥을 먹습니다.


그 옛날에는 풍습도 전혀 다르고, 말도 너무 안 통하고 약국하나 없을것 같은  제주에 가는 심정은 중한 죄짓고 마치 귀양살인 가는 심정이였는데, 아마 지금 미국이나 아프리카 가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질 때였지요.


부모님은 목적이 있어서 3년만 살다가 나오려고 갔지만, 현실은 너무 어려워서  10년 이상을 살다보니 저는 시집갈 나이가 되었지요.

80년도에 공무원인 제주 토박이 총각에게 낙인이 찍혀 결혼하여 부모님과 시골에서 살게 되었지요.


당시 제주 시골 풍습은 돌로 쌓은 화장실을 썼는데, 옆에는 1미터 정도 낮게 돌로 돼지막을 크게 만들어서 길렀어요.


그래서 사람이 똥을 누면 1미터 낮은 돼지우리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져서 쌓이면 돼지들은 꿀꿀꿀 서로 많이 먹겠다고 발버둥치다가 미끄러지면, 누런 페인트색 돼지가 되었어요.


저는 변 보는 시간이면 돼지가 물을까봐 많이 떨며 미루다 보니 변비가 되고 변비가 심해지니 치질까지 생겼어요.


 당시에 제주에서 나온 고기가 아주 맛있어서, 자신있게 똥돼지라는 브랜드가 생겼는데, 지금은 그런 화장실도 없어져서 진짜 똥 돼지는 거의 없답니다.


가끔 제주 똥 도야지 식당이란 상호를 보는데 그만큼 온갖 영양식을 먹고 배설한 도야지가 좋다고 알려진 거지요.


맙맛 떨어지는 이야기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아들이 결혼해서 한 집안에서 살면서도 밥은 부모가족 따로, 아들가족 해먹어도 그 당시엔  전혀 흉이 안 되였어요.


저는 육지에서 자라서 그런 문화생활을 이해 할수도 없었고, 차마 한집안에 살면서 밥을 따로 해 먹을수가 없어서 같이 해드렸어요.


 처녀때 부터 집안 살림을 많이 해서 음식 요리와 살림을 잘하여 집안 식구들에게 인기 만점 이였어요.

남편은 아내 솜씨 자랑하려고 신혼 초에는 3일이 멀다하고 직장 친구들을 데려왔어요.

저는 그분들이 맛있게 먹는 것이 좋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최선을 다했어요.


 문제는 남편 하나만 보고 간 시댁은 4대 독자에 줄줄이 알사탕 같은 시누이들은 6명이나 되였는데, 3살부터 두 다리를 못써서 기면서 사는 소아마비 시누이까지 있었지요.


시댁은 직장 생활하는 남편과 소아마비 딸을 제외한 7식구는 그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일벌이나 소처럼 일하느라 장애자 딸은 포기하고 방치해둔 처지였지요.


수많은 세월을 방 지킴이 노릇만 하면서 학교 가고싶은  마음은 불같아도 주위 시선도 두렵고, 그 몸으로 용기도 안 나지, 부모님은 공부시킬 꿈도 안 꾸니까 혼자서 한글을 다 배웠답니다.


지금 부모 같으면 업어서라도 학교 보냈을 텐데, 시대를 잘못 태어난 탓이겠지요.

저는 마음도 착하고 얼굴도 너무 예쁜 시누이를 차마 그냥 두고만 지켜 볼수가 없었어요.

저는 학교에서 농번기에만 운영하는 탁아소에 취직하여 첫 월급을 타서 사고싶은 것도 많았지만,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시누이 발이 될 휠체어를 사 주었어요.


눈이 있어도 소경처럼 20년간 대문 밖을 못 가본 시누이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 주고파서 휠체어를 사와서 않힌 순간 “언니!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며 울먹이는 바람에 우리 둘은 부둥켜 않고 감격하여 통곡을 하고 말았어요.


 옆에서 지켜본 가족들도 같이 우는 소리에 이웃 사람들은 초상 난줄 알고 놀라 찾아 오셨다가 감격스런 장면을 보고 같이 울었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지칠 줄 모르고 틈만 나면 교회도 데려가고, 관광도 시켜 주었더니 창백하고 우울했던 시누이 얼굴에 혈색이 돌고, 산뜻한 웃음을 볼수 있었어요.

그 후로 오랫동안 기면서 살아서 오그라진 다리를 피는 수술을 두번 하여 보조기 를 박아, 다시 오그라지는 것만 예방하는 수술을 하였어요.


그러다가 서울에 장애인 회관에서 부속품 만드는 일을 7년 하면서 돈을 모아서 같은 장애자를 만나 결혼하여 예쁜 딸을 낳고, 새벽 6시에 부부가 휠체어 타고 직장 차로 출근하여 아기는 직장 탁아소에 맡기고, 종일 일하다가 8시에 퇴근하며 열심히 벌어서, 결혼 10년 만에 부모 형제 도움 없이 2억 짜리 아파트를 사서 입주하는 날 가족들은 너무 대견하여 감격해서 또 눈이 벌겋토록 울었어요.


20 여년간 방 지킴이에서, 휠체어 타고 세상나들이, 수술, 자기일, 결혼, 아기출산 아파트 장만까지 하니, 다 이루었다는 안도감과 목표 없이 나날이 지속되는 틀에 박힌 생활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은데, 취미 생활이나 개인 활동이 전혀 없는 것이 안타까워요.

지금 저는 고향 가까운 곳에서 향수를 즐기며 삽니다 .감사합니다.


pd님 죄송하지만 도서 상품권 주실수 있나요?

아들이 대학생인데 신학기때는 책을 많이 사야돼요.

상품권 타서 아들에게 도움주고 자랑도하고 보람을 느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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