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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졸지 말고 서 있어라", "숙제 해 와라".. 학생 취급받은 직장인, '직장내 괴롭힘'일까?
2022-11-30 561
조수영기자
  jaws0@naver.com

[전주MBC 자료사진]

"거기 조는 학생, 뒤에 나가 서 있어!"


학창시절 한번쯤 직접 경험했거나 봤을 법한 교실 풍경입니다. 교사와 학생이란 관계, 어느 정도의 위계와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에선 훈육 차원으로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게 만약 직장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올해 한국전기안전공사에 콜센터 직원으로 입사한 A 씨. 지난 4월 신입사원 교육을 받다 그만 졸았습니다. 이를 본 교육직원은 마치 학교 선생님처럼 훈계에 나섰습니다. 뒤에 서서 강의를 듣도록 한 것입니다.



■ 신입사원에게 '숙제' 내준 한국전기안전공사


학생 지도를 방불케 하는 '직장인 지도'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A 씨는 업무테스트 결과, 낮은 점수를 받기도 했는데요. A 씨는 물론 교육직원까지 콜센터 간부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교육직원이 A 씨에게 '숙제'를 내준 것이죠.


공사가 마치 학교처럼 소속 직원을 학생처럼 취급한 셈입니다.


A 씨는 반발했습니다. 본인이 겪은 일들이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며 사내 게시판에 호소한 겁니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A 씨의 주장을 들어줬고, 교육직원을 견책 경징계 했습니다.



■ "졸지말고 서 있으라", "숙제 해오라".. 노동당국 판단은?


교육직원은 억울함을 주장하며 노동당국에 구제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룬 전북지방노동위원회, A 씨를 학생처럼 취급한 교육직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A 씨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은 겁니다.


우선 교육직원의 잘못이 없다고 봤습니다. 강의 도중 졸고 있던 A 씨를 서 있도록 한 건, 강의에 집중하도록 당연히 해야 할 '책무'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저 '서 있으라'고 했을 뿐, 추가적인 제재가 없었던 점도 고려됐습니다. 


명색이 직장인에게 부과된 '숙제'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숙제’라는 방법이 통상 교육자가 교육생의 실력 향상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라며 역시 적정한 '업무 범위'에 들어간다고 본 것입니다.


결국 A 씨가 직장에서 느꼈을 법한 수치심과 모욕감과는 별개로 이런저런 지시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판단입니다.



■ 노동자들이 기대는 '괴롭힘 금지법'.. 현실은?


올해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진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준 행위"가 근로기준법상 금지 대상입니다. 여기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야 처벌할 수 있다는 전제가 달렸습니다.


직장내 괴롭힘 사건에서 어디까지가 '적정한 괴롭힘'인지는 여전히 논쟁적입니다. 부당해고나 부당징계 구제 신청에서 입증 책임 역시 피해를 주장하는 노동자 측에게 있기에 증명 역시 쉽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노동당국이 접수한 직장내 괴롭힘 신고는 2만 424건. 이 가운데 80% 이상이 알아서 취하했거나 '법 위반 없음' 등으로 처리됐습니다. 


어디 억울함을 호소할 데 없는 노동자들이 일단 기대고 보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아직 현실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면서 현장의 혼란은 지속될 것 같습니다.


조수영 기자 jaws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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