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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10년간 국비 들여 키운 '도심 반딧불이'..내년에 볼 수 있을까?
2024-02-12 429
허현호기자
  heohyeonho@gmail.com

[전주MBC 자료사진]

"와, 반딧불이 움직여!"


고사리 손에 올라온 노랗고 작은 불빛,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아이들의 탄성이 그치지 않습니다.


조명이 없는 깜깜한 풀숲 사이에서 반짝이는 빛 무리, 마치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늦여름 밤 전주 삼천 상류 인근의 모습입니다.


전주천 관련 기사를 쓰며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상,


타 도시에 살다 몇 년 전 전주에 정착한 기자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 삼천에 자리잡은 '늦반딧불이'.. "전국에서 매년 2천여 명 찾아"


다른 반딧불이보다 늦은 8월에서 9월 중순 사이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늦반딧불이',


빛과 환경에 워낙 예민하다보니 산골이 아니고서야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올해 여름 전주 생태하천협의회가 조사해보니 무리를 지은 늦반딧불이가 삼천 상류에서만 무려 894마리나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전주천 상류 쪽에는 이미 자체 발광하며 삼천의 '깃대종'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반딧불이들.


최근에는 하류 쪽으로도 점점 영역을 넓혀가며 도심 속에서까지도 종종 목격담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시민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매년 진행되는 생태 탐방 때마다 전국적으로 2천여 명이 넘는 탐방객이 찾는다고 합니다.


도심 바로 인근에서, 이렇게 감탄을 자아내는 광경을 볼 수 있다니. 올해 여름에는 꼭 직접 눈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걱정도 앞섭니다. 내년에도, 앞으로도 계속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까요?


■ 우범기 시장 "삼천, 더 밝고 안전하게"..반딧불이 어떡하나?


걱정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6일, 전주시는 전주천에 단상을 설치하고 기자들을 불러모았고, 대대적인 현장 브리핑을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범기 시장은 무려 7천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전주천과 삼천에 쏟아붓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목적은 홍수 예방과 시민 편의를 위한 수변 인프라 조성.


무려 15만 제곱미터의 하천 바닥을 긁어내고 물 흐름을 방해하는 나무를 베어내 하천을 정비하겠다는 것,


하천변 곳곳에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광장이나 체육 시설을 대거 설치하겠다는 겁니다.


시민 안전도 특히 강조했습니다.


천변에 있는 노후 가로등, 특히 반딧불이 주 서식지에 근접한 삼천 세내교 상류 부근까지도 LED등으로 전면 교체해 하천을 "더 밝고, 안전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시야를 가리는 갈대숲 등 잡풀 제거는 이미 지난해부터 진행됐습니다.


■ "빛 공해 등 반딧불이에 치명적..주 서식지까지 위협"


삼천이 밝아지면 밝아질수록, 반딧불이는 더이상 이곳에 살기 힘들어집니다.


반딧불이가 내뿜는 빛은 교미를 위해 짝을 유혹하기 위함이기 때문인데요.


주변의 빛 공해가 심할수록 자연히 짝짓기도, 번식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천변을 뒤덮던 식물들을 베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 늦반딧불이 애벌레는 특이하게도 달팽이를 먹이로 삼고 자랍니다.


달팽이들의 먹이가 되고, 그늘진 습지를 유지해줄 식물들이 없으면 달팽이도 살기 힘들고, 늦반딧불이 애벌레도 먹이 활동을 못하게 되는 겁니다.


점차 하류 쪽으로 서식지를 넓혀가던 반딧불이는 난적을 만나게 된 셈입니다.


게다가 전주시가 주민 민원을 이유로 삼천 상류까지도 빛을 더 밝힐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하니 주 서식지까지도 위헙받고 있는 겁니다.


■ "강력 사건 계기, 시민 안전 때문"..CCTV는 고작 2대 신설?


사실 전주시가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데도 이유는 있습니다.


지난 8월 우림교 인근 천변에서 강력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40대 남성이 피해 여성을 급작스레 습격해 풀숲으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이었습니다.


때문에 천변을 더 밝게 하고, 수풀도 베어내겠다는 겁니다.


분명 일리가 있지만, 의문스러운 지점은 있습니다.


사실 사건 직후에 천변에 CCTV가 없어 범죄자들이 이를 이용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많았는데요.


그래서 CCTV를 늘리기로 했는데 산책로를 비추는 '방범용'이 아닌 하천 쪽을 비추는 '재난 영상용'으로 밝혀져 전주시가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천에 수천억대 예산을 투입한다는 올해는 방범용 CCTV를 얼마나 확충하기로 했을까요?


확인해봤습니다. 고작 CCTV 2대를 설치할 수 있는 예산만 확보됐다는 답변입니다. 사업 진행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과연 시민 안전을 위한 정책인지, 진정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환경부 사업으로 수백억 국비 들여 키웠는데..다른 예산 들여 성과 무위로?


삼천 늦반딧불이는 그냥 저절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아닙니다.


막대한 혈세 투입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3년 환경부 사업으로 선정된 삼천 생태하천복원사업에는 모두 280억 원의 예산이 들었고, 이중 핵심이 '늦반딧불이 복원 사업'이었습니다.


국비까지 들여가며 애써 반딧불이 애벌레는 물론 먹이인 달팽이까지 방사하며 개체수를 늘려온 건데, 또다른 예산을 들여서 10년여의 노력을 들여온 성과를 무위로 돌리는 셈인 겁니다.


■ 대책 고심 중이라지만.."버드나무 벌목 전례 반복될까"


전주시는 이같은 우려를 알고 있다는 반응입니다.


민원 때문에 LED 조명 확충에 대한 검토는 어쩔 수 없지만, 주 서식지에는 조명의 조도를 낮춘다든지, 활동 시기인 8~9월에는 소등을 한다든지 하는 대책을 고심 중이라고 합니다.


환경단체와도 논의하겠다고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여전히 걱정이 많습니다.


전주시가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 전주시에는 '전주 생태하천협의회'라는 민관 거버넌스가 있어서, 하천 정책에 대해서는 민관 협의를 통해 진행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민선 8기 들어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전주시가 모든 것을 일방통보식으로 진행해왔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모습이 '전주천 버드나무 무차별 벌목' 사건입니다.


반딧불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범기 전주시장이 발표한 이번 계획에 다양한 생물들이 지장을 받을 것 같습니다.


잡목이나 수풀 속에 터를 잡고 사는 새들도, 전주천 물길을 자유롭게 누비게 된 수달도, 맑은 물을 자유롭게 누리던 물고기들도. 역설적으로 10여 년 넘게 생태하천을 가꿔온 과거 전주시의 성과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올 여름에는 이같은 아름다운 광경을 제 눈에 꼭 담아야겠습니다.


하지만 걱정입니다. 내년에는, 앞으로는 반딧불이를 계속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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