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화) 임주아작가의 책방에 가다

 

책임과 판단 / 한나 아렌트

어제 저녁 마음이 답답해지는 여러 뉴스를 보면서, 한 지자체장의 발언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면서도, 이 책임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는 “마음의 책임”이라고 대답하는 대목에서 아직도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임자라면 결코 마음의 책임만 이야기해선 안 되겠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멈출 때 평범한 개인도 악이 될 수 있다.” 

이른바 ‘악의 평범성’을 일갈한 독일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요, 이 책에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총 여덟 개의 서로 다른 주제를 통해 분석합니다. 가족에서부터 도시와 국가, 마침내는 지구 행성의 일원으로서 인류라는 최상위 인간 다수체에 관한 책임과 판단은 어때야 하는지 질문하고 있는데요. 

20세기 혼돈 속에 선악 판단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지만, 시대에 상관없이 지금 여기 오늘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녹스 / 앤 카슨

연일 출판계에 화제로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요즘 시대 보기 드문 ‘활판공방' 장인들의 수작업을 거쳐 한 장 한 장 붙여 만든 책인데요. 

마치 국어사전이 담겨 있는 듯 작은 박스를 열면 192쪽의 종이가 아코디언처럼 하나로 이어진 한 권의 책이 들어있습니다. 

왼쪽 면엔 고대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시를 번역하는 과정이, 오른쪽 면에는 오빠를 먼저 떠나보낸 동생 작가 앤 카슨의 상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시인이자 고전학자인 앤 카슨은 세상을 떠난 오빠를 기억하기 위해 그가 남긴 파편들을 모아 수첩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오빠가 썼던 편지, 오빠와 찍었던 사진, 유품 등을 수집해서 그림을 그리고, 찢거나 오려 붙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한 권의 어둡지 않은 밤의 비가를 만들었습니다. 

’녹스‘는 라틴어로 밤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회복기 / 허은실 

이제는 우리가 설움에서 회복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간곡한 소망을 담아낸 시집입니다. 

시인조차 서정을 용납할 수 없는 시대에 이 시집은 다시 서정을 회복하기 위한 기록이자, 우리의 다음을 기원하는 기도가 되어줍니다. 

‘반려’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 책임이 있어요”  

서로의 존재가 벅차 서로를 책임지지 못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은 바로 책임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채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늘 품고 있는,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시인은, 

“슬픔은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이의 어쩔 수 없는 기질에서 기인한다”고 말합니다. 

‘보칼리제’라는 시에서, 슬픔의 그 기질은 “내 몸에 동거하는/ 다른 혼의 숨소리”라고 합니다. 

“후회를 모르는 얼굴로 이해 없이 사랑하고 싶다”는 구절에도 밑줄을 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