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동 주부입니다.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직장 다니는 저에게 참 고마운 택뱁니다. 상자를 뜯고 뒤적뒤적 보물찾기하듯 시댁에서 챙겨주신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네요. 참 별 개 다 들어있습니다. 양말에 행주, 병따개, 기념품으로 받은 수건, 고무장갑까지요. 바로 어머님께 전화드려 얘기했더니 또 깔깔 웃으십니다. 할머니가 나 몰래 넣으셨나보다 하시면서요. 저희 할머닌 이렇게 어머님이 사 놓으신 걸 감춰두셨다가 저에게 주시죠. 이런 것도 사려면 다 돈이다 하시면서요. 저 처음 시집 왔을 때 어쩜 이리도 고우냐~ 하시며 손을 안 놔주시던 할머니. 결혼 7년 동안 단 한 번도 이 손자며느리에게 싫은 소리 안 하신 분입니다. 이번엔 할머니가 깨끗이 다듬어 신문지에 꽁꽁 싸주신 파, 무우와 볶은 깨, 감자, 말린 옥수수까지.... 하나하나 사랑이 나오네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올 해 여든이 되시는 할머니는 사실 남편의 외할머니입니다. 어머님이 딸만 셋의 장녀라 10년 전부터 모시고 계세요. 그래서 그런지 저, 꼭 제 친 외할머니인 듯 착각할 때도 많습니다. 어찌 보면 진짜 닮으신 것 같기도 하구요. 할머니 귀가 잘 안 들리세요. 그래서 이렇게 택배 받은 날엔 배에 힘을 꽉 주고 전화를 겁니다. "할머니~ 커피 있어요?!" 보통사람이라면 정말 귀청 떨어질 만한 괴음이죠. 저의 고마움의 표시는 늘 이런 식입니다. 커피를 무척 좋아하셔서 하루에 보통 석 잔은 드시거든요. 그리 좋아하시니 말릴 수도 없고..... 이제는 의례 보자마자 "할머니~ 커피 타드릴까요? 커피! 커피!" 대화가 시작될 정도니까요. 지난 어버이날 시댁에 가서 남편이 할머니 영정사진 찍어드리자고 했을 때 순간 코끝이 시큰해져 오더라구요. 그러나 저희 할머니.. 참 위트 있으시죠. 지금 너무 쭈글쭈글하니까 환갑 때 찍은 걸로 하자고.... 이후 내내 할머니 생각이 떠나질 않네요. 할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되는데요.... 그래서 저 이렇게 선물 받아되는데요. 하지만 전 기껏 해드린다는 게 커피 몇 번 타드리는 것뿐이니... 어떡하죠? 한없이 부족해요. 그래도 이렇게 귀여워 해 주시는 할머니가 계셔 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할머니~~ 천천히 다 보답할게요~그리고 이제 날도 더워졌으니 시원한 냉커피로 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