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엄마는 가시고기 입니다.
자신의 살을 새끼에게 먹이고 죽어가는 그런 가시고기 입니다.
따르릉 따르릉 " 큰 애냐..??시금치 뜯어 보내주랴..??상추도 보낼테니 먹어라."
며칠후 또 따르릉 따르릉 " 큰애냐..?? 된장 끓여 보냈으니 밥먹어라 굶지말고 꼭 먹어 니가 잘 먹게 되직하게 끓여 보냈으니 꼭 먹고 일해라..시래기도 지져서 보내주랴,.?? 너 시래기 지진것 좋아 하잖여..낼 모래는 시래기 지져 보내마" 따르릉 따르릉 "큰애야 김치 부침게 해서 보낸다 꼭 먹고 일해라" 며칠 걸려 한번씩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다. 마트입구에 조그마한 김밥 코너를 하다보니 반찬 있는 밥 먹는것은 어렵다. 바쁘다는 핑계로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니 엄마는 늘 걱정이돼 이것저것 만들어서 동생편에 보내신다. 내 입맛에 맞게 보내오는 그 반찬이 반가움 보다는 늘 죄스럽고 울컥 뜨거운 불덩이가 가슴에 치밀어 오른다. 반찬을 받을 때마다 서러움에 눈시울을 적시고 내 자신의 미련함에 눈물을 흘린다.
몇해전 이었던가. 남편모르게 대출을 내어 빌려준 큰 돈을 떼이고 뒤집힌 하늘을 바라보며 텅빈 논두렁에 주저않아 꺼억꺼억 울다 지쳐 마른 울음까지 토해 내다 못해 피를 토할 것 같은 그해 가을.. 어떻게 수습을 할 길이 없어 밤새 가위에 눌리고 밤을 하얗게 보내는 날이 늘어만 갔다. 남편 모르게 갚기에는 나에게 너무도 큰 감당하기 힘든 짐이었다. 천근만근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 길은 죽음 뿐이라는 것이 답이었다. 얼마나 많은 날을 서럽고 억울하고 분해서 울며 망설였던가. 결국 은행에서 남편에게 연락을해 그동안의 일들을 안 남편은 나를 질책 하기보다는 나를 꼭 안아주며 눈물로 위로해 주었다. " 당신이 날마다 잠을 못자며 시궁창에서 기고 있을때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진즉 알지못하고 수습해 주지 못해서.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살자"며 나를 위로해 주었기에 생명의 끈을 잡았었다. 그후 3년여의 내 생활은 김밥코너에서 18시간 이상 일을 했다. 열심히 이를 악물고 해야했다. 너무 힘들고 지쳐있을때 나의 마음을 붙들어 준것은 여성시대에서 흘러 나오는 희재 엄마의 사랑의 편지 사연 이었고 또한 가시고기 같은 나의 엄마였다.
"애 큰애야 나는 니가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다 너는 착한게로 나중에 복 받을거여 틀림없다 두고봐라 힘들어도 꾹 참고 빚갚고 살면 좋은 날이 올거여 이렇게 공부 잘하고 착한 니 딸들 생각허고 건강하기만 해라. 건강허면 돈은 벌 수 있응게..딴맘 먹지 말고 살어. 나는 니가 살아 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마워.."를 몇번이고 되풀이 하셨다. 한심한 내가 살아있는게 무엇이 고마울까 왜 그리 멍청한 짓 했냐고 나무라지도 못하실까.. 나는 엄마의 그런 말씀을 듣고 그 앞에서 울지도 못했다. 가슴이 빠개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 너무도 엄마가 불쌍해 보였다. " 그래 열심히 살자 불쌍한 엄마를 죽이지 말고 내가 열심히 살아야 엄마가 사는 길이야.." 다짐을 했다. 그 후 전화로 안부를 물으시며 매번 " 나는 니가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맙다 고마워" 하시며 나를 세뇌 시킨다....잘살아 달라는 뜻으로....
엄마는 온갖 병에 시달리고 계신다. 고혈압, 당뇨병, 천식, 골다공증, 관절염 거기에 내가 보탠 전화벨 공포증까지..전화벨 소리가 나면 가슴이 내려 앉으셨단다. 딸이 어떻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 올까봐...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심하게 아프셔서 오래 서 계시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텃밭에 시금치를 심으셨다. 김밥에 넣을 시금치를 뜯어 보내실려고... 너에게 이것을 보낼수 있어 고맙다 하시며 전화를 하신다. 엄마는 아마 내가 지쳐 포기 할까봐 두려우신 모양이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잘 살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받으실려고 그러나 보다... 며칠전 나는 엄마가 보낸 보따리를 풀어보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한 보따리 가득 파 뿌리를 말려 보내셨다. 분명 집에는 파가 없으니 파 농사 많이 짓는 강씨 아저씨 댁에 가셔서 가져 오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강씨 아저씨 집은 낮은 산 위에 있다. 그 집을 올라 갈려면 45도 정도의 가파른 오르막 길이다. 우리도 헐떡이며 올라 가야 하는데 그곳을 가셨다면 10분 거리를 아마도 한시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조금가다 쉬고 또 쉬고 하시면서 갔을게 뻔한 것이다. 앞 텃밭에 나오는 것도 힘겨워
하는데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엄마 파뿌리 어디서 났어..??"하고 물었더니 "강씨 아저씨네가 파를 많이 다듬었다기에 버리지 말고 놔두라고 하고 외발 리어카 가지고 실어 오는디 한시간도 더 걸리더라..그래도 니가 쓴다니까 좋다.." 하시며 흡족해 하시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더 물어 볼 수가 없었다. " 엄마 그 올라베기를 어떻게 갔다 왔어..다시는 그러지마.." 그러고 더 말을 할려고 하니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엄마 손님왔어 끊을게..이따 다시할께.."하고 핑계를 대고 수화기를 놓고 나는 어깨가 들썩 거리도록 울어 버렸다. 실컷 울고 나니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엄마는 아마도 삼사일은 몸살을 앓으실게 뻔하다..그래도 나에게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신다. 그곳을 외발 리어카를 끌고 올라가고 내려 오시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허리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꼈으리라..다리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살약 하나 사서 보내지 못해다. 약을 사서 보내면 엄마가 또 신경 쓰실것 같기에 모른척 했다. 엄마는 그런 분이시다. 뼈를 깍는 아픔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가끔 " 엄마는 제발 다른 엄마처럼 엄살도 부리고 화도 내고 당당하게 요구도 좀 해봐요." 그렇게 말해 보지만 엄마는 가시고기 처럼 당신의 뼈를 깍아 우리를 주신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그런대도 나는 엄마를 찾아 뵙지 못했다. 엄마가 나의 그런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으실려고 가게로 나를 보러 오셨다. 이모님댁에 다녀 오신다는 핑계를 대고 오셨다. 아이들이 준비해 놓은 꽃 한송이를 받으시고 행복해 하시고 고마워 하시는 그 모습이 왜 그리 마음 아픈지 목이 메어 왔다. 30분이면 갈수 있는 엄마 집에 일년에 한번밖에 못가 봤으니 나는 너무도 불효자식이다. 나는 김밥을 말면서 문득 문득 엄마의 절규에 가까운 말씀이 내 마음을 때린다." 니가 살아 있어 주어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마워" 하루에도 몇번씩 내 가슴을 후벼파는 말씀이다. 왜 내가 엄마에게 두 어깨를 누르는 돌 덩이가 되었는지 마음이 아려온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가시고기가 되고 싶다. 엄마 이제 걱정 그만 하세요..이딸 건강하고 열심이 살고 있어요... 열심히 도와주고 위로해 주는 남편과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신 엄마가 없었다면 이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엄마에게 한번도 "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다...엄마 너무너무 사랑해요..가슴시리도록 엄마를 사랑합니다........
-큰딸이-
송용희 전북 익산시 동산동 뿌리마트내 흥광김밥
063-854-0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