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편지쇼에 참여했던 이해숙 입니다. 오랜만에 두 분께 인사드립니다.
여느 해처럼 사람 많은 길목엔 구세군 자선냄비가 자리하고 성탄 트리가 거리를 아름답게 꾸민 세모가 되었네요. 각 방송사에서는 특집방송이 이어지고 언론기관에서는 올해의 10대 뉴스가 보도됨을 볼 때 한 해가 마무리 되어 감을 실감합니다. 성탄 3일 연휴를 공으로 보내기 아까워 남편과 이틀을 모악산을 올랐습니다. 코스를 조금 길게 잡아 4시간의 산행을 하며 이런저런 집안일과 아이들 얘기, 가는 해와 오는 해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른 시간 등산로에 납작이 엎드린 낙엽들은 서리로 엷게 화장한 얼굴입니다. 무리지어 뒹굴 땐 그저 그러려니 지나치던 녀석들이, 서리 맞아 잎맥이 선명이 살아난 모습을 보니 한 해를 살다 가는 그네들의 생이 애처롭게 느껴졌습니다. 꽃잎을 다 날린 길목의 억새도 허허롭습니다. 산비탈엔 활엽수들이 발목까지 낙엽들을 덮고 서서 이 계절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나무들마다 꽃눈과 잎눈을 피워 내년 봄을 기다리며 준비를 하고, 능선을 일렬종대로 서서 산에 푸른 정기를 뿌리며, 유연한 곡선으로 팔을 활짝 펼치고 서 있는 노송의 그림은 언제나 고고한 한 폭의 한국화입니다. 탈모예방과 피부미용에 효과 있는 피톤치드 발산이 많은 편백나무 숲을 지날 땐, 겉옷을 벗고 긴 심호흡을 하며 겨울산이 주는 쨍한 서늘함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아래에서 산을 올려다보니 허연 이를 드러내고 시원스레 웃는 산의 얼굴이 보입니다. 중턱의 자작나무 숲입니다.
노송과 어우러진 바위에 걸터앉아 남편과 우리 집 올해의 주요 뉴스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 중에서도 보름간 다녀온 남편의 해외연수, 8살짜리 늦둥이의 전국학생음악대회에서의 특상수상, 2학기엔 놓쳤지만 1학기 기말에선 올백 맞은 일,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나의 편지쇼 수상과 12월 중순에 연락받은 격월간 수필전문지에서의 ‘신인상’수상 소식. 문학소녀시절 가졌던 글쓰기의 소망에 이제 한 발 다가선 것입니다. 그러나 상 받은 일 말고도 별 탈 없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준 것이, 가족 모두 아픈 곳 없이 보낸 한해가 너무나 감사 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성실히 살아온 한해였습니다.
10월 편지쇼 행사에서 남편을 주제로 한 편지글로 남편 직장에서나 저의 직장에서 우리들은 동료들의 얘깃거리가 되었답니다. 주변 선생님들에게 ‘작가선생님’의 애칭을 얻었습니다. 늘 읽고 쓰는 모습을 보이더니 기어이 일 낼 줄 알았다며, 격려해 주시고 함께 기뻐해 주신 분들이 많아 행복했습니다. 아직도 손이 가는 애들 셋 키우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일, 아이들 잠든 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글쓰기를 통한 자기개발이, 주변분 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고들 합니다. 짠돌이로 소문내 버린 내게 서운함 보단 ‘글 잘 썼던데’ 하며 격려해 준 남편은 상금의 일부를 금일봉으로 제공하는 나의 성의를 끝까지 거절하며, 자네 몫이니 자네 쓰고 싶은 대로 쓰라고 하였습니다. 두 분 선생님도 제가 상금 어떻게 썼는지 무척 궁금하시죠? 알뜰하게 잘 썼답니다. 친정엄마께 십 만원 용돈으로 드렸더니 너무나 좋아 하셨어요. 저의 직장에는 상금의 반을 썼습니다. 80명분의 떡과 음료로 시원스레 한 턱을 쐈습니다. 맛있는 것 없이 입으로 자랑만 하면 얼마나 얄밉겠어요? 맛있는 것 먹으며 듣는 자랑은 그래도 들어줄 만 하지 않겠어요? 문학회 회원들과 교수님께도 술 걸게 샀습니다. 마지막으로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조카에게도 용돈을 줬더니 딱 맞게 떨어졌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에게는 사비를 들여 턱을 내었으니, 오리려 상금을 능가하는 지출을 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신나고 행복한 지출이 되었는지요. 주변 분들에게 얘깃거리를 제공하고 맛난 간식으로 즐거움을 드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쁨은, 9월부터 시작한 수필창작의 결실로 문단에 데뷔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꾸준히 읽고 또 읽으며 쓰고 또 쓰는 생활 속에서 내가 이루어 낸 성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정식으로 내 이름표를 달고 글쓰기를 할 것입니다. 등단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며 내 삶의 여백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워나갈 것입니다. 등단작품은 3,4월호에 실린다고 합니다.
늘 생활이 그랬듯이 남편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건지산을 돌아 아침운동을 하며, 마당을 뒹구는 담쟁이와 감나무 이파리들을 쓸어 모으며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마당청소를 환하게 합니다. 오랜 시간을 두어 형성된 습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 없듯, 몸에 밴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일상을 살아갑니다. 이제 겨울방학이 다가 오고 있네요. 겨울방학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황금의 시간입니다. 수영도 하고 학기 중에는 잡기 힘든 장편을 읽을 계획입니다. 토지21권, 빨강머리 앤10권에 이어 ‘혼불’을 읽으려 합니다. 장편을 읽으면 꼭 독후감을 쓰는데 혼불을 읽고 나서도 독후감을 쓰려합니다.
두 분 선생님! 근무시간 중에 방송 듣기는 힘들지만, 제게 mbc는 친정 같은 정을 느끼게 합니다. 늘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는 좋은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기에 존경합니다. 황금돼지해라는 새해에는 또 다른 희망의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처럼 기다려집니다. 두 분에게도 새해에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라며, 정수만 PD선생님, 조남숙 작가 선생님, 여성시대 가족 모든 분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