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편지-어린 시절의 달콤한 유혹

제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 어른 키보다 약간 큰 나무가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도대체 저 나무가 무슨 나무지?하는 궁금증으로 지냈습니다. 잎은 벚나무잎과 비슷했으나 꽃이 달랐다는 기억이 납니다.
봄이 지나고 올망올망 작은 초록 열매가 달렸지요.
'매실인가?'
그런데 시골집에 매실 나무가 있어서 확실히 아는데 매실나무는 줄기에 가시가 달려있는데 요건 매끈한 겁니다.
'도대체 뭐지?'
그렇게 궁금증을 안고 지내던 차였지요.
 
며칠전 장맛비가 굵게 내리던 날,
집으로 가는데 바로 그 나무 아래에 푸른빛을 살짝 감춘 노오란 살구 몇 알이 떨어져 있는게 보였어요.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정말로 살구가 달려 있는게 아니겠어요!
아직 먹기엔 약간 서운해 보입니다.
필시 굵은 빗방울에 그만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만 것이리라.
살구를 보는 순간 어린시절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습니다.
 
깊어가는 봄, 여름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어린 기억 속 살구나무에 달린 어린 살구가 초록 잎사귀 사이로 노랗게 영글어 갑니다. 시골집 들어가는 초입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었지요. 단순히 우리 집 아래에 있어서 쉽게 아랫집으로 불러도 되련만 우리는 굳이 '혼자 사는' 할머니집이라고 불렀다. 동네의 다른  할머니는 대부분 마음도 너그럽고 푸근해서 동네 아이들 모두의 할머니가 되기도 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유독 우리 아랫집 할머니는 욕심많고 심술궂었습니다. 

 그 집 울타리 바로 안쪽으로 족히 100년은 되어 보이는 제법 굵은 살구 나무가 있었습니다.
노랗게 열린 실하고 잘 생긴 살구를 모른채 하고 다니는 것은 살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그것도 매일매일 그 살구를 보면서 지나 다녀야하는 우리는 살구의 유혹과 엄첨난 양심의 시험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누가 알까요? 무수히 많은 살구가 열리지만 할머니는 한번도 우리에게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살구 맛을 전혀 못 본건 아니었습니다. 오며 가며 떨어진 살구를 먹기도 했고 할머니가 멀리 출타한 틈을 타서 장대로 두드려 따 먹기도 했으니 기억에 남는 서리였지요. 작은 언니와 저, 남동생 우리 악동 삼남매는 한명이 망보고 하나는 장대를 휘둘고 나머지 한명은 유유히 소쿠리에 줍고...
역할분담도 확실히 했습니다. 또한 집에 와서 먹을 땐 당연히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하고.

 지금 아랫집은 헐리고 그 자리엔 근사한 이층집이 들어 섰습니다.
당연히 어렸을 적 그 살구나무는 베어졌지요.
나무가 베어졌을 때 사실 눈물도 나왔습니다.
내 어린시절의 한토막이 잘리운 것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정말이지 맘 편히 살구 한번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시골 우리집에도 작은 살구 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제법 노란 살구가 열렸지만 그 옛날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시절의 맛을 잃어간다는 것도 포함하는 걸까요?
 
아직 빗방울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떨어진 살구를 몇 알 집어가는게 눈에 들어옵니다.
집에 가서 그러겠지요?
"아파트 입구에 있던 나무가 글쎄, 알고 봤더니 살구 나무더라구!"
이렇게 말입니다.^^
 
그래, 그렇게  나도 지금 떨어진 추억 한 토막을 이야기 하고 있는게지요.
 

주소 : 군산시 지곡동 해나지오@101동 1308호
이름 : 송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