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도청 잔디광장에 커다란 현수막들이 걸려 있습니다.
최근 들어 전북도청이 잔디밭 곳곳에 설치한 것입니다.
현수막에는 ‘도민과 어린이의 활동 공간인 잔디밭에 반려견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다른 현수막에는 ‘잔디밭은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임에도 반려견 출입으로 목줄 미착용, 배설물 발생과 미수거로 인한 위생 불결 등에 따라 도민과 부모님들의 민원이 계속되고 있다’고 쓰여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 반려인의 출입은 제한하는 겁니다.
전북도청 관계자는 “도청 잔디밭은 개방된 공간으로 어린이집 등 기관에서 견학을 오는 경우가 많은데, 늘어난 가을 소풍에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출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어린이가 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민원이 제기된 사례는 없지만 혹시 모를 예방 차원에서 결정했다”며 “저녁이 되면 많은 반려인이 잔디밭을 찾는데 일부 펫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례도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북도청의 이 조치에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반려견을 키우며 도청 잔디광장을 자주 찾는다는 A 씨는 “모든 개가 아이들에게 위협적이거나 펫티켓을 지키지 않는 것도 아닌데, 모든 반려인이 불이익을 받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밝혔습니다.
A 씨는 또 “펫티켓이 문제라면 개선 사항을 홍보해야지 출입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아쉬운 행정 조치”라며,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의 제한 장소만 늘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아이 둘과 광장을 찾은 한 여성은 “호기심이 많을 때라 손으로 이것저것 만지는데, 개의 분변이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아이들의 공간에 출입을 막는다면 환영한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전주시청 광장과 공원은 개 출입 제한하지 않아]
아이들이나 시민들이 자주 찾는 놀이터, 공원 등 다른 공공장소의 현황을 파악해 봤습니다.
시청 광장에 어린이를 위한 ‘야호 놀이터’를 운영 중인 전주시는 전북도청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보입니다.
“아이들이 노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광장의 개념이 시민 모두가 함께하는 공간이다 보니 다양한 분들이 산책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전주시 관계자의 설명.
또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에 특정 집단(반려인)의 제한을 고려한 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평소 반려인들이 많이 찾는 전주시 효자동 ‘문학대공원’을 관리하는 전주 완산구청도 비슷합니다.
문학대공원에서도 일부 반려인들이 개의 목줄 착용이나 배변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속적으로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홍보와 단속을 늘려 관리를 개선해야지 공원에 반려견 출입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주시 공원관리팀에 문의해본 결과, 반려동물의 출입이 제한된 도시 공원과 야외 공공장소는 전주시는 물론 다른 지역에도 사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주문학대공원 (전주MBC 자료사진)
[전문가 “비반려인과 반려인 공존 위한 노력 있어야”]
동물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관련 전문가들은 ‘공공장소에서 특정 집단을 제한하는 정책이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보입니다.
반려견의 대소변 등에 대한 민원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대처가 ‘반려견 출입금지’나 ‘반려인 전면 배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
조윤주 대한수의사회 동물복지위원은 “극단적인 ‘출입 제한’을 시행하기 전, 잔디밭에 사람이 앉는 구역과 반려견이 다니는 구역을 나눠보거나, 배변 미처리를 줄이기 위해 봉투 비치를 하는 방식 등으로 자치단체가 ‘공존’을 위한 노력을 선행했는지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조 위원은 “한국 사회에서 한 번 규정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일반화되는 성향이 강한데, 공원처럼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에 출입을 구분 짓는 사례가 발생하면 더 이상 공존이 힘들어지고, 서로를 배제시키는 것이 ‘새로운 기준’이 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공공장소란 경계 없이 서로 다른 삶과 경험을 보유한 사람들이 교류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인데 출입 금지 등의 규칙을 내세우면, 비반려인에게는 개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함이 오히려 확산될 수 있는 조치”라고도 지적했습니다.
전북도청은 ‘시도지사는 공중위생상의 위해 방지를 위해 필요한 때에는 특정 지역 또는 장소에서의 반려동물 출입을 제한하는 등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동물보호법 제13조에 따라 도청 잔디밭의 반려견 출입을 금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북도청은 다만 “다른 공원도 반려견 출입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여러 부분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지만 일부 집단을 배제하는 것처럼 비추어질 수도 있겠다”고 밝혔습니다.